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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등산화 20년 신고도 밑창만 수선해 가셨죠"YS 등산길·가택연금 함께 한 등산화 만든 송림수제화 임명형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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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5 (수) 09:34:49 | 승인 2015-11-25 (수) 09:38:52 | 최종수정 2015-11-25 (수) 09:35:53
   
 
     
 
"높으신 분이니 새 등산화 맞춰 드린다고 했죠. 그런데 굳이 수선만 고집하시더라고요."
 
서울 을지로 3가 구석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송림수제화 임명형(52) 사장은 1993년 초 말끔한 양복 차림의 청와대 직원이 들고 온 짙은 갈색 수제 등산화를 받아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등산화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중반 이곳에서 구입한 이후 민주산악회 산행에서도, 가택연금을 당해 상도동 집 정원을 서성일 때도 같이 한 YS 정치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신발이었다.
 
그런데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20여년 만에 이 등산화의 애프터서비스(AS)를 맡긴 것이다.
 
임 사장은 24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왔다고 하기에 '높으신 그분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고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등산화는 매우 닳아 밑창의 요철이 완전히 없어지다시피한 상태였다고 한다.
 
"우리 등산화는 30년을 넘게 신어도 밑창만 바꾸면 또 신을 수 있어요. 그래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밑창이 닳으면 새 신발을 맞추는 게 대부분이죠."
 
당시 임 사장도 새 등산화를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직원은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무조건 AS만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완고하게 밑창 수선만을 고집했다고 임 사장은 전했다.
 
임 사장은 "그 정도로 낡은 등산화를 또 창갈이해서 신는 분이 또 어디 있겠나 싶어요. 몇십년 동안 그렇게 신었다면 아주 검소하신 거죠. 등산을 좋아하셨으니까 아마 그 등산화에 정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송림수제화는 1936년 문을 연 이후 80여년간 등산화와 구두를 만들어온 한국 수제화의 '명가'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유명인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걸려 있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받은 표창장 10여장만 벽 한쪽에 줄지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진외종조부(아버지의 외삼촌)인 고 이귀석씨, 아버지 고 임효성씨에 이어 임명형 사장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틈틈이 일을 돕다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제화 일을 시작했고 이후 한 길만 걸었다.
 
등산객들이 점차 늘어나던 1950년대 임 사장의 부친은 국내 1호 등산화를 만들었다. 이어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고무창 개발에 성공하며 송림수제화 등산화는 업계의 '대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YS를 비롯해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임 사장 부자의 손을 거친 등산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고 한다.
 
민주산악회의 기념사진을 보면 YS가 이 갈색 등산화를 신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등산화는 YS가 1980년부터 3년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시절 그의 벗이 되기도 했다.
 
임 사장은 "아버지가 당시에 YS 쪽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산에 못 가니까 우리 등산화를 신고 정원을 계속 산책하셨다는 겁니다. 등산화의 거친 밑창으로 끊임없이 걷다 보니 잔디가 다 죽어버릴 정도였대요"라고 전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룬 큰 별이었으나 임 사장에게 YS는 검소함으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손님일 뿐이다.
 
다른 손님에게나 마찬가지로 송림수제화 마크가 찍힌 등산화가 건강 유지에 도움됐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단다.
 
임 사장은 평소 TV를 잘 안 봐 고인의 서거 소식도 그날 오후가 돼서야 알았다고 털어놨다.
 
"여든여덟이면 아주 오래 사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수는 누리신 것 아닐까요. 우리 등산화가 대통령의 건강에 도움은 된 것 같네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고인의 물품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우리 등산화도 그중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살짝 웃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 등산화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영삼민주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YS는 송림등산화를 포함해 여러 켤레의 등산화를 갖고 있었지만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기증해 지금 남은 것은 코오롱 등산화 하나밖에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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