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이 땅 위에 내 가족 몸 뉘일 집 하나 없는 서민들의 설움을 담은 김사인 시인의 시 '지상의 방 한 칸'이다.

설움 중에 배 고픈 설움 다음이 집 없는 설움이라 했다. 남의 집에 살다보면 공짜로 사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주인집 눈치를 보게 된다.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셋값에 서둘러 이삿짐을 싸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자연 내 집을 갖는데 집착할 수밖에 없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설움이 워낙 크다보니 내 집 마련은 필생의 꿈이자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나가다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장만한 내 집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생의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이 되리라 부푼 희망도 품어본다.

그런데 요즘의 현실을 보면 그 꿈을 이루기란 점점 더 쉽지 않아 보인다. 집값이 말 그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더 나아가 '미친 집값'이란 말의 중심에 제주가 있는 상황이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공아파트가 3.3㎡ 당 2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물론 재개발이란 이점을 갖고 있다지만 그래도 '헉'소리가 나는 가격이다.

웬만한 브랜드 아파트 가격은 보통 4억~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7억원 이상 되는 곳도 허다하다. 이런 여세 속에 올 10월 제주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한국감정원 기준)은 2억1754만원으로 지난해 10월 1억5073만7000원에 비해 올해 44.3% 올랐다. 주택 평균 매매가격도 10월 1억8338만6000원을 기록, 지난해 10월(1억4079만3000원)보다 30.2%(4259만여원) 증가했다.

제주의 집값 폭등은 유입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수요가 늘어난 원인이 크다. 하지만 그보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의 가세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임이나 술자리 등에 가보면 주변의 누구누구가 집을 수십채 갖고 있는데 집장사로 돈을 얼마 벌었다는 등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분양절차를 무시한 물밑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모델하우스도 없이 분양 플래카드가 걸리고, 땅도 파기 전에 벌써 분양이 끝났다고 하는가 하면 고가에 분양권 거래가 이뤄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렇다보니 돈도 없고, 정보도 없고, 연줄도 없는 서민들은 집이 필요해도 구할 수 없거나 웃돈을 얹어주면서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에서도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먼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도내 주택공급률은 111% 에 달한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집에 살고 있는 자가 비율은 56.2% 에 그쳤다. 수치상으로는 집이 남아돌고 있지만 '내 집'이 없는 도민이 절반에 가깝다는 얘기다. 남들은 한채는 기본이고 수십채씩 갖고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실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행정이 최근 입주자 모집공고도 없이 공동주택을 분양하는 등 분양절차를 어긴 건축주를 형사고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숫한 민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를 계기로 행정에서 도내 주택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전반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분양실태 점검은 물론 실거래가 모니터링을 통한 투기수요 억제, 주거실태 조사와 이를 반영한 주거종합계획 수립 등 서민들의 주거복지안정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공직자의 소명은 궁극적으로 주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책무다. 주거 불안으로 시름이 깊은 서민들을 외면한다면 행정의 직무태만, 나아가 직무유기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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