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심 시인의 「더 이상 처녀는 없다」는 성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WOMEN’‘MEN’‘THE OTHERS’‘TRIANGLE’ 등 4개의 소제목으로 묶인 시편들은 섹스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가 곳곳에 담겨있다.

 시인에게 있어 성이란 철저히 물화(物化)된 것으로 읽힌다. 그런 성 인식은 때론 남성의 성기를 만져야 잠을 이룰 수 있다(‘처녀의 잠자리’)는 의식으로까지 치닫는다.

 시집 전편에 보이는 섹스에 대한 이미지는 결국 기존 여성성의 해체에까지 이른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라는 젠더로서의 성이 아니라 성을 통해 남성주의적 사고를 강요당하는 세상의 관념에 대한 시인 나름의 저항의 일환이다.

 사랑이라는 이름도 섹스 또는 섹스의 요구에 대한 변주로 이해되는 시인의 인식은 어쩌면 그 날 것의 이미지에 갇혀 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시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이런 성적 진술들은 때론 거칠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남성의 페니스를 만지고 그것에 의해 잠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지금의 시적 현실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남성에 의해 항상 타자화(他者化)된 여성의 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가부장적 사고의 무장해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성적 판타지의 또 다른 서술에 그친다.

 따라서 김병심의 시편들은 성담론을 전면에 드러냈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의 부조리성에 대한 성찰에까지 이르지 못할 때 단지 억압된 성 의식의 토로라는 단편적 코드로만 읽힐 우려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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