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시인·제주문인협회 회장

나는 바닷가 태생으로 유년 시절부터 바다와 친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방파제 위를 걸어서 학교를 가야 한다. 폭풍이 오기 전날부터 제법 파도가 사납다. 큰 파도가 방파제 위를 넘어오기 때문에 파도의 크기를 잘 헤아려야 무사히 통과할 수가 있다.

줄넘기할 때 회전 리듬을 타고 뜀뛰듯 파도의 수를 세면서 기회를 엿봐 냅다 달려도 물벼락을 뒤집어쓴다. 젖은 옷을 비틀어 짜 입고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 차츰 성장하며 개헤엄을 배우고는 용연 바위에서 다이빙하기, 잠수를 하고 나서 갯바위 낚시질 흉내를 내다가 썰물이 나면 물속에 허리를 담그고 수중낚시질을 즐겼다.

늬껍(미끼)은 게수리(갯지렁이)를 썼는데 소금에 절인 게수리를 깡통에 담아 목에 걸어 썼고, 낚은 물고기는 정술로 만든 꿰미에 꿰었다. 사춘기가 지나 노 젓는 것을 배운 후 밤낚시로 오징어 붙이기와 갈치 낚시를 했고, 청년이 될 즈음 작살을 만들어 잡기 쉬운 주리(쥐치)쏘는 법에서 우럭·문어·따치(독가시치)쏘기를 배우고, 훨씬 긴 작살로 숭어 쏘는 법, 웽이(혹돔)쏘는 법까지 터득했다.

숭어 쏘는 법은 조금 독특하다. 숭어는 떼 지어 다니는데 수면 아래서 유선형의 몸매를 자랑하며 빠른 속도로 헤엄친다. 그 속성을 이용해 허리 정도의 수심에서 작살질 해 작은 돌멩이를 주워들고 어느 정도 앞에 던지면 수중 파문에 놀란 숭어 떼가 반대쪽으로 돌아서 다가오는 순간을 노리고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고무줄을 당기고 있다가 재빠르게 작살을 날린다. 숭어 쏘기는 정확한 겨냥보다는 무리 중에 하나가 맞는 확률을 선호한다.

해녀들은 한쪽 팔 길이의 소살을 갖고 물에 들었고, 해녀의 폐활량에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남자들은 양팔 길이의 작살을 들고 다녔다. 작살 만드는 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굵은 쇠줄 끝을 불에 달궈 망치로 내려치며 미늘을 양쪽으로 만들고는 쇠를 가는 줄로 다듬어 쏜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노실게(날카롭게) 한 다음 적당한 대를 골라 불로 곧게 펴고 일부를 쪼개어 쇠줄을 끼워 넣고 노끈으로 단단하게 감고는 대 끝에는 신축성이 좋은 붉은 고무줄 묶으면 작살이 됐다.

총각 때 일이다. 수심 깊은 곳에 웽이가 낮잠을 자는지 수중 물결에도 가만히 있어도 숨이 짧아서 작살을 당길 수가 없었다. 마침 가까이에 있는 해녀에게 소리를 건너고 손짓으로 큰 물고기가 있다고 했더니 늠름하게 다가왔다.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데 물소중기를 입었으니 허벅지까지 각선미가 그대로 깊은 물 속에서 투영됐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물결에 반사되는 맨살 그림자마저 기가 막혔다. 이것은 숲 속에서 달빛에 비친 여자의 나신에서 굴절하는 볼륨 그림자와 같을 것이다. 상상이지만 달 밝은 여름밤 땀도 식힐 겸 젊은 남녀가 튜브 하나를 겹쳐서 타고 멀리까지 유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상상은 바다를 잘 알아야 가능할 체험이다.

이렇게 바다 귀신처럼 까불다가 해초가 돋은 바위틈에 사는 솔치(쑤기미)를 잘못 밟고는 솔치 등에 돋은 독 가시에 발이 찔러 비명을 지른 적도 종종 있다. 피가 나면 임시방편으로 돌멩이로 찔린 부위를 때려서 지혈 하고는 바릇잡이(해산물 잡이를 위한 나들이)를 계속했다.

검게 빛나는 바위너머 짙푸른 물결을 헤치며 항굽싸는(잠수하는) 젊은 해녀 뒤태에 제주도 남자들은 들돌(마을마다 동네어귀에 놓아두고 힘을 측정하는 돌)을 들고 노를 저었다. 여자들이 저승 해초밭을 펼치며 전복을 캐고 미역을 캘 때 남자들은 마소를 키우면서 한라산 자락을 누볐다.

용천수를 좋은 술로 알고 수선화 향기를 담배 연기로 느끼면서 몸을 다스렸고, 민물장어와 전복, 때로는 홍삼과 존다니(두툽상어) 회를 먹으면서 힘을 키우고는 울담너머 동네처녀에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그때는 울담에도 똥깅이(붉은엄지털게)도 살았는데 땅꽃(채송화) 꽃잎을 슬그머니 뜯어먹는 그림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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