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서귀포지사장

우리나라 속담에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말이 있다. 유달리 콩을 좋아하는 비둘기는 하늘을 날고 있어도 온통 관심은 밭두렁의 콩에만 쏠려 있다는 것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과는 달리 속 마음은 엉뚱한 곳에 가 있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소작인들이 주인집 논보다는 몰래 자투리 땅에 심어둔 자신의 콩이 추수 때가 되면 서리를 맞지 않을 까 온통 신경이 쓰이는 것을 두고 유래됐다고 한다.

남의 일을 하면서 마음은 자기가 심어 놓은 콩밭에 가 있으니, 맡은 일은 자연히 소홀할 수 밖에 없어 이를 늘 경계해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이다.

얼마전, 전국 시·도지사와 교육감에 대한 직무수행평가가 발표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시·도 주민 8500명(시·도별 500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전화 방식의 유선전화 임의걸기 방법으로 '11월 시도지사 및 교육감 직무수행 평가'를 조사했다.

원 지사는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55.3%를 받아 전국 17개 시·도지사중 7위에 올랐다. 김관용 경북지사가 69.9%로 가장 높았고 안희정 충남지사(65.3%), 김기현 울산시장(62.8%)이 각각 2·3위를 기록했다. 이석문 교육감은 43.5%를 받아 7위를 차지했다.

정치인들이 여론조사에 대해 일희일비 하거나 울고 웃지만 이번 조사는 매달 이뤄지고 지지도나 선호도가 아닌 점에서 사실상 추세를 파악하는 정도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1년전의 평가와 사뭇 달라 걱정이 앞서고 있다. 제주도정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한 보도자료를 보면 원희룡 지사가 전국 시·도지사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2014년 10월 정례 광역자치단체 평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원 지사가 65.5%의 긍정평가(매우 잘함+잘 하는 편)를 받아 김관용 경북지사(64.2%), 최문순 강원지사(61.6%)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자치단체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권역별 국정수행 지지도와 비교하면 원 지사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제주지역 국정수행 지지도(46.9%)보다 18.6% 포인트 더 높았다고 친절히 덧붙였다. 이런 직무수행 평가가 1년새 10%포인트 빠지면서 대권을 꿈꾸는 지사의 리더십에 상처가 났다.

특히 지난 1년간 제주도의회와 예산 갈등, 감귤구조 혁신, 신항만 추진 등 곳곳에서 잡음이 생겼지만 제주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국제자유도시 원동력이라고 평가받는 공항 인프라 확충 계획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는데도 도민들은 상대적으로 냉담한 점수를 준 것이다.

'제주를 바꿔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변화와 혁신의 열망이 투표로 표출되면서 원희룡 도정이 출범했으나 민심은 '뭐가 바뀌었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쓰레기는 넘쳐나고 교통은 갈수록 막히고 주차장은 전쟁터로 변하는 등 피부에 와닿는 생활 체감도는 악화되고 있다.

제주의 생명산업인 감귤은 최악이다. 잦은 비로 품질이 하락해 감귤값은 급락하고 비상품 감귤은 늘어만 가고 농감협이나 롯데칠성 감귤가공공장 앞에 가공용 감귤을 실은 농가 트럭이 수백미터씩 늘어서면서 농민들은 자신의 수매 차례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비 날씨, '하늘 탓'이지만 마땅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농가들 사이에서는 "지사가 해외로 나가 대권 행보를 보일 것이 아니라 농가들은 끌어안고 다독거리는 감귤 마케팅이나 정치적 제스처라도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내년, 총선이 열리고 민선6기는 3년차에 접어든다. 콩밭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거대한 이슈나 담론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민생을 더 챙기길 당부한다. 도민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서울도 감동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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