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부국장대우 경제부

불과 2년 전 일이다. 사회 현안들을 외면한 채 진학과 취업 등 개인적 관심사에 매몰됐던 청년들의 성찰과 각성을 담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뜨거웠다. 사회·정치 문제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호소했던 대자보는 전국 대학가는 물론 외국까지 확산되며 강한 울림을 남겼다. 그 이후 '대자보'는 시대의 한 흐름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스마트 시대를 비틀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사고 규명을 촉구하는 노란 대자보가 전국을 흔들었고, 지난해도 국정교과서에 대한 신중론을 담은 대자보가 골목까지 누볐다. 최근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편적 판단을 지적하는 대자보가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2016년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제주에 "올 한 해 안녕할 수 있을까요"를 묻는 대자보 하나가 내걸렸다. 이 신통방통한 것은 모두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절실하거나 절박한 사람들의 몫이다.

올 한해 5%대 성장이 기대된다는 전망보고서와 어느 소설가의 망국선언문이 비슷한 시점에 세상에 던져질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살기 힘들어진 상황은 분명한 것 같다. 제주에서는 불과 1년 사이 '내 집 마련'의 뒤에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힘들다'는 말이 더 많이 등장했다. 지난해만 집값이 8.08%나 올랐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아파트는 13.77%나 뛰었다. 1월만 하더라도 평균 1억4424만2000원이던 주택 매매가격이 12월 1억8887만9000원으로 5000만원은 더 마련해야 '내 집'을 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더해 아파트는 1억6260만3000원이던 평균 매매가가 12월 2억2835만7000원으로 '억억'소리가 났다.

평균 주택 전세 가격이 12월 1억1630만7000원으로 연초 9233만8000원에서 그 부담이 커진 것을 감안하면 은행 빚을 내서라도 돈을 더 보태 집을 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침 저금리로 대출이자 부담까지 줄어들었으니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리가 발동했을 수 있다. 어찌됐든 이 모든 것은 '평균값'이다.

집 걱정 만이라면 어떻게든 벌어서 갚는다 치지만 요즘은 그 '벌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제주 임금 수준이 '전국 최저'라는 빤한 얘기 보다 미래 불안감이 더 하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소비자동향조사에서 도민들이 느끼는 취업기회전망소비자동향지수는 92로 전달 대비 6포인트나 떨어졌다. 향후 6개월 후를 가늠하는 전망치다. 앞서 지난해 9~11월 3개월 동안 98을 유지하며 회복을 기대했던 분위기를 꺾었다.

임금수준전망소비자동향지수도 지난해 9월 121을 찍은 후 3개월 연속 내리막을 이어갔다. 12월 전망치는 전달 대비 3포인트 하락했다. 이들 수치는 단순히 앓는 소리가 아니라 올해 도입된 '정년연장제'와 정치권 명분 싸움으로 처리가 무산된 노동개혁법 등의 여파다. '1년차도 짐 싸는 세상'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정리해보면 은행 상품 수익으로는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빚은 계속해 늘고, 양극화 심화로 '중산층'이 사라지는 불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일자리'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주고받았지만 현실과 타협해 '줄어든 꿈'조차 아등바등 목을 매야 하고 그마저도 '오늘내일'떠날 날부터 준비해야한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비극이다. 행여 잊을 새라 '빈곤층'이 양산되는 것도, 포기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새해가 열렸지만 마음은 아직 맞을 준비가 덜됐다. 기회균등, 형평성이란 단어가 있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낙오자를 만든다. 이런 분위기가 올 한 해 계속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이젠 더 이상 탓할 대상을 찾기도 힘겹다. '보릿고개'를 심하게 앓으며 밤새 '안녕'하셨는지를 물었던 시절이 아프게 돌아온다. '안녕'할 수 있을까. 올 한해 이 '안녕'의 참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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