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KBS 텔레비전 '도전 골든벨'이 800회를 넘겼다. 1999년 9월3일 첫 방송을 시작한 지 16년이 지났으니 꽤나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문제풀이와 함께 고교생들의 끼와 젊음을 발산하는 이 프로그램을 한때 좋아했다. 문제를 푸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그리고 교사들까지 일심동체(一心同體) 되며 집중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바꿨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암기식 단답형에 의존하는 문제는 '단답형 상식인간'을 양산하는 우리 교육의 맹점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많은 인원수의 학생을 상대로 재미있게 풀어나가려니 객관식 단답형 문제를 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 봐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초시와 복시를 거쳐 합격한 33명이 임금 앞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험인 전시가 있었다. 왕이 제시한 책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답안을 제출하면 이를 심사해서 순위를 정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최종논술시험이었던 셈이다.

가령 "인재를 어떻게 구(求)하고 써야 하는가"라는 세종의 질문에 강희맹(姜希孟)이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해줄 수 있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도전 골든벨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것은 '최후의 1인'에게 주는 50번 골든벨 문제에서 이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사전에 채점기준을 정하고 푸는 시간 8~10분과 심사에 2~3분 정도로 총 10~13분이면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답을 쓰는 동안에는 잔잔한 음악을 들려줘도 좋을 것이다. 문제만 잘 낸다면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북돋워 주면서 시청하는 많은 사람에게도 공동관심의 화두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주관식 문제는 각 대학의 입시를 관장하는 부서에서 출제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국가·사회의 현안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출제하고 그것을 잘 풀어낸 학생에게는 대학에서 장학혜택까지 준다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차원에서 좋은 투자가 될 것이다.

우리 교육은 이른바 '평균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단답형 사고를 조장하는 교육으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물을 키우지 못한다.

전 세계 인구의 0.24%에 불과한 유대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수가 30%에 이르는 원동력은 그들의 교육에 있다.

이원재 한국·이스라엘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스라엘의 한 학교에 전학을 갔다. 그곳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다투듯이 토론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회고한다.

유대의 속담에는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의견이 있다'는 말이 있다. 유대인들은 '남과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강조한다. 도전 골든벨에서 보여주는 단순단답형 문제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일상대화에서도 단답형으로 대답할 물음 대신에 서술형으로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답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는 게 좋은 대화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려면 좋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해야 한다. 단답형 대답과 평균인간을 만드는 질문은 이제 그만해도 될 때다.

골든벨 문제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혁신은 작은 데서부터 출발한다.

도전 골든벨에서 생각 깊은 문제가 나오고 좋은 생각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많은 사람의 뇌리에 공통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만은 모두가 한 마음이 돼 우리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2016년의 작은 소망 하나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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