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아니, 세월이 이리도 빠른가. 벌써 새해 달력의 첫 장이 뒤로 젖혀지고 오늘이 어느새 2월의 첫날이잖은가. 누군가가 이렇듯 빠른 세월을 일컬어, 별안간에 활시위를 떠나버린 화살처럼 '쏜살같이 빠르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 말이 진배없다 싶다. 아니, 되레 화살의 빠르기가 뭐 그리 대단한가 싶게까지 느껴지는 오늘이다.

안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심란한 이 아침,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 이리 될 줄 알았다"며 죽어간 버나드 쇼나, "괜히 왔다 간다"고 중얼거리며 떠난 걸레스님 중광의 회한 서린 독백이 문득 내 머리를 스친다.

그런 중에 이번엔 "이만하면 됐다"는 칸트의 대단한 자신감이 한데 끼어들면서부터는 좌충우돌 내 머릿속이 한결 더 어지러워졌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자기만족을 누리면서 살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는 이것을 인간 욕구의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제5단계에 자리를 정해 놓았다. 그렇다. 나 비록 한낱 필부라 한들 이러한 욕구가 어찌 없을쏜가. 그러나 인생이란 이렇듯 욕망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님에 오늘의 고뇌가 서린다.

인생, 정말로 생각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실로 엄위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는 곧 인생을 철학 없이, 개념 없이 상황에 휘둘리며 그냥저냥 막 사는 삶이다.

삶의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생각 한 후 달리는 방식, 달리며 생각하는 방식, 달린 후 생각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딱히 어느 방식이 옳다 할 순 없으나, 순발력을 요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행동 이전에 생각하는 습관이 보다 합리적이긴 하다. 이 세 가지 방식엔 공통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곧 '생각과 행동'이다. 문제의 상황에 따라 생각을 행동 앞에 두느냐 뒤에 두느냐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경우건 생각과 행동은 반드시 동행해야만 한다. 삶의 거의 모든 상황에서 생각과 행동이 함께 할 때 시행착오나 오류는 그만큼 최소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한평생 누구에게나 최소한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첫 번째의 기회는 '온 줄 몰라' 놓치고, 두 번째의 기회는 '긴가민가하다' 놓치고, 마지막 세 번째의 기회는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에게 마침내 붙잡히는 것이다. 이 또한 생각과 행동의 함수로 풀어낼 수 있는 하나의 예제이다.

또한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로부터 늘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다면, 이는 비록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이론 중 최고가 아닌 차상위의 단계라 할지언정 나는 만족하리라. 이러한 삶이야말로 얼마나 '건강'하고 '복'된 삶인가.

'건강'에 관한 세계보건기구의 공식적 정의에 의하면 '질병·불구가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행복한 웰빙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위의 누구로부터 존경받기를 바라는가. 그 대상으로는 대체로 제자, 후배, 동료, 친구, 가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그중에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을 마음에 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야 사실 언감생심이겠지만, 아내와 아들, 딸들에게서만은 비록 이 모습 이대로나마 존경받고 싶다는 생각을 솔직히 감출 수 없다.

가족이란 누구인가. 저들은 나의 분신이자 내 사랑의 더없는 대상이요, 나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자랑은 물론 심지어는 감추고 싶은 허물마저도 알고 있을 나의 피붙이들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세태에선 비단 가족이라고 그리 녹록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 그렇지. 존경은 번번이 기대와는 반비례하는 법이려니. 머릿속 어지럽고 가슴이 아려온다. 이제 다시 저 깊은 생각의 늪으로 외로운 생각여행을 떠나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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