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촌장

한겨울 추위를 견디느라 움츠렸던 팔을 힘껏 펴고 크게 기지개를 켜본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건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싹트나보다.

올해 입춘일은 유난히 따스했다. 새로운 절기가 드는 날이라서 인지 추웠던 날이 많았던 예전에 비해 올해에는 '새철드는 날'을 따스하게 맞이하니 마음만은 즐거웠다.

우리가 어렸을 땐 입춘일을 새철드는 날이라고 해서 몸도 정결히 하고, 음식도 특별히 곤밥으로 지어 먹으며 남의 집엔 함부로 찾아가지 않았다. 집 앞 대문에는 '입춘대길'이라는 춘첩을 정성껏 써서 붙이며 1년의 새 출발을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에도 제주시 관덕정 목관아에서 입춘을 맞이한 행사로 입춘굿이라는 큰 굿을 했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스스로의 마음으로 축원하고 기원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큰 굿은 큰 규모로 재연되고 있지만 시민들 스스로가 마음으로 축원하고 기원하는 진정성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여신 자청비를 비롯한 1만8000신들에게 수신방의 춤사위와 덕담으로 드리는 굿이라 던지, 새 출발을 알리는 농악대의 흥겨운 모습들, 그리고 현대 풍습에 걸맞은 부대행사 등은 많은 시민들에게 새 희망을 불어넣어주는데 충분히 일조하고 있다.

새 출발의 희망을 주는 입춘일에는 겨우내 쌓인 눈 밑에서 새롭게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입춘절식으로 먹는 풍속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좋은 뜻의 입춘방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자주 쓰는 입춘방으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이 있다.

이 문장을 정성껏 써서 좋아할만한 후배에게 주었더니 참 고맙다고는 하면서도 확실한 뜻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우리말로 풀어서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새해에 기쁜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라고 써 주었더니 매우 좋아하면서 답례까지 하려 했다. 보답이 없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나에게도 따라서 즐거움이라 생각되니 되레 내가 더 기뻤다. 그러면서도 '세대가 많이 변했구나'하는 직감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문화가 한문보다는 한글문화로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입춘첩은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보다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자 되기 바랍니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길 바랍니다' 등 우리말로 풀어서 입춘첩을 써줬다.

낙엽수의 가지마다에는 새움이 곧 터지려는 듯 새 물이 올라있다. 봄을 알리는 매화는 꽃 중에서도 가장 이르게 개화하는 꽃으로 맑은 향기와 청아한 모습 고결한 자세로 봄소식을 전해준다.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신흠선생의 시 구절같이 우리들 마음속에 맑고 지조 높은 마음씨를 갖도록 하는 깊은 뜻을 심어 주는 꽃이다. 그러기에 문인화를 즐기는 화가들은 새봄이 되면서 매화를 그리는 손길이 바빠진다.

'입춘을 지냈으니 춘하절이 분명하다/반가울사 반가울사 춘하절이 더욱 좋다/삼십육정 도시춘에 봄춘자가 더욱 좋다/하양하목 이귀춘에 꽃화자가 더욱 좋다/당나라 악양루도 꽃화자가 보기 좋다/반가울사 반가울사 춘풍삼월 반가울사/백백홍홍 자진 곳에 만화방창 시절이라/놀고 보세 놀고 보세 화전하고 노라보세…' 이와 같은 화전가에서 느낄 수 있듯, 옛날 선조대에서도 화창한 봄날이 오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꽃놀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매화가 만발하고 개나리도 피어나고 있으며 '우수'도 지나 개구리가 튀어 나오려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다가오는 새봄을 맞아 독자 여러분께도 우리말로 된 입춘 덕담 한마디 하고 싶다. "2016년 2월 새봄을 맞이해 여러분 모두 '입춘대길 건양다경'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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