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옷장을 열어 보니 옷이 가득 차 있다. 어느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평소에 즐겨 입는 옷을 자연스럽게 골랐다. 그러다 보니 아침마다 선택되지 못한 채 한 계절 내내 바깥 구경을 해 보지 못한 옷들이 많이 있게 된다. 옷을 평소에 많이 사는 편도 아니고, 가끔씩 옷장을 정리해 의류수거함에 가져다 놓기도 하지만 한 계절 동안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옷이 많이 있다. 신발장은 어떤가? 운동화, 구두, 부츠, 캐주얼화, 등산화, 슬리퍼 등 다양한 종류의 신발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가? 장롱 속은 어떤가? 핸드백, 서류 가방, 배낭, 여행용 가방 등이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 수명이 다할 날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는 물건을 사는데 큰 관심은 없지만 유독 볼펜 수집에 욕심이 있고 개인적으로 선물을 할 때 볼펜 선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명품 볼펜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볼펜을 사서 모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물로 받거나 선물을 하고 남은 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모아뒀는데 지난 15년 동안 모아 둔 것이 어느 덧 20여 자루가 됐다. 이것을 볼 때마다 이 욕심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하면서도 볼펜 부자가 된 마음에 그냥 지나치고 했다. 작년 연말 이 욕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볼펜을 모두 나눠 주었다.

래리 버켓은 소비의 동기를 구분하고 우리가 소비할 때 소비의 동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을 구입하는 것을 필요(needs)라고 하면서 이 동기에 따른 소비는 당연하다고 보았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구입하는 것을 욕구(wants)라고 하면서 이 동기에 따른 소비는 선택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한편, 사치나 자기과시를 위해 구입하는 것을 욕망(desires)이라고 하면서 이 동기에 따른 소비는 허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물론 소비의 동기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고 소득 수준에 따라 개인의 필요, 욕구, 욕망이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건전한 소비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확고한 태도 때문에 가난해지는 청빈의 삶을 살자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소유를 나눠 스스로 가난함에 이르는 영성적 가난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근검절약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의 소비를 줄여 이웃을 도우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돈이나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활용도가 낮거나 거의 활용되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이 활용하도록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제 봄이 오고 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옷장과 신발장, 장롱을 열어 보자. 지난 겨울 동안에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이나 신지 않았던 신발들, 몸무게의 변화로 크거나 작게 된 옷이나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가방들을 정리해 의류수거함에 넣거나, 아름다운 가게나 바자회 등에 기증해 보면 어떨까? 욕심이 줄어들수록 마음이 부자가 됨을 올 봄에 한 번 체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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