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부국장 대우·경제부

1970년 5월, 김지하 시인이 사상계에 발표한 '오적(五賊)'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운율이나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권력층을 신랄하게 그것도 정공법으로 풀어내는 것이 과거 탐관오리를 비꼬던 판소리 수준의 카타르시스를 던졌다. '오적'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분명 세상이 변했고 풀어낸 통로도 늘어났지만 나아진 기미 보다는 무수한 오적들 사이에 갇힌 듯이 불편한 기분이다.

총선을 앞두고 한치 앞도 안보일 만큼 정신없는 정치권만의 얘기는 아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살만한 지표도 요즘 '오적' 수준의 미움을 사고 있다. 지난 2008년 소비경제지 프로슈머가 지목했던 물가 상승의 주범인 주거비, 교통비, 학비, 사교육비, 식료품비 등 다섯 가지 지표다. 낯설지 않은 것이 최근 제주에서 '가계부 물가 따로 지표 물가 따로'를 견인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소비자물가가 1%대 상승에 그치는 등 안정적이었다는 분석과 달리 '먹고 살기'힘들다고 느낀 이유기도 하다.

호남지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제주 소비자물가는 지난해만 전년 대비 1.1% 올랐다. 수치만 보면 안정세다. 하지만 '먹고 사는'부담은 커졌다. 이런 사정은 사실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2년 무상보육·무상급식이 유가상승 부담을 덜어내며 6년만의 최저치인 2%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던 적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 더 힘들다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해만 식탁물가를 반영하는 식료품.비주류 음료가 2.5% 올랐다 전·월세 등 집세가 전년 대비 1.4% 올랐는가 하면 가정용품.가사서비스도 2.8% 뛰었다. 전년 대비 7.7% 하락했다는 교통물가 중 시내 버스료(13.0%) 세차료(9.5%) 주차료(7.7%) 등은 나란히 상승 항목에 올랐다. 교육물가도 '반값 등록금'홍역을 치렀던 국공립 대학교 납입금은 0.1% 하락한 반면 유치원 납입금(7.8%)과 고등학생 학원비(1.4%)가 오르면서 체감물가를 끌어올렸다.

물가지수 가중치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불만을 키우고 있다. 예를 들어 집세는 2013년 이후 정부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제주도의 지난해 주택 전세금 상승률은 5.32%로 전체 물가상승률의 5배 수준이다. 아파트(10.17%)만 놓고 보면 10배 수준이다. 소비자물가 지수 산정에서 주거비 가중치는 전체 9%(1000분비 기준)에 불과하다. 밥상물가를 구성하는 농림축산품가격도 물가상승률의 최소 7배를 웃돌지만 이들 품목의 가중치는 4.07%가 고작이다.

가정마다 소득이나 지출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최대한 보정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달에 1000만원씩 집값이 뛰고 치솟는 장바구니물가로 먹고 사는 게 빠듯해진 상황이다. 전국 기준 지표는 현실과 거리가 있고 애매한 기준은 거품 논란으로 이어진다. 지역 현실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지표들 사이에서 서민들로서는 소비를 늘려야 경제가 산다는 주장이 딴 세상 소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수년간 계속된 경기침체에 부동산 호황으로 인한 양극화까지 심화된 상황이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서민 생활부터 안정돼야 하는 게 기본이다. 공존과 청정을 핵심가치로 한 제주도정의 미래비전도 좋고, 하루가 멀다고 각종 약속이 쏟아지는 선거의 계절도 좋다. '잘 살게 하겠다'는 약속은 누구나 한다. 그보다는 체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그럴싸한 계획 보다는 피부에 가까이 느껴지는 지표가 신뢰도를 높인다. 제주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집중되고 이동이 활발한 서울특별시도 경제, 주거, 일자리, 생활만족도 등을 평가하는 '자치형 행복지표'를 구축했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살이가 어떤지를 가늠하려는 노력이 있고 없음이 주는 차이는 크다. 특별자치도에 필요한 것이 예산과 정책, 규제 만은 아닐 터다. '제주형'수식어는 이들 '물가 오적'을 잡을 실생활 지표에 가장 먼저 붙여져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