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 교수 학장·이학박사·논설위원

국내·외 운동경기를 직·간접으로 관람하는 시대가 열렸다. 스포츠열풍이 활기를 띠면서, 정보매체역시 발달한데 따른 것이다. 공통점은 선수들이 유니폼과 함께 백넘버(back number)를 달고 있는 점이다. 소속사와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리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까지 공동운명체처럼 여기면서 '백넘버와 동반관계'에 놓이게 됐다. 규칙을 준수하며 당당한 승리를 갈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리할 경우 '후원세력과의 공감대'와 더불어 영광까지 안겨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하거나 규칙을 위반할 경우 공동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대급부를 안게 된다. 삼연(三緣)을 중시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혈연·학연·지연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굴레에 얽매어온 것이 우리현실이다. 이것이 공동운명체며, 개인이익을 앞세우는 현대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제주도는 이런 점에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보수경향이 짙다. 고량부삼성에서 시작해, 유배인의 정착으로 이어진 '파생계보에 근거'하면서 조상묘역관리를 시작으로 혈연과 지연에 걸쳐 공동체를 중시해온데 따른 것이다.

여(呂)씨 문중에는 구체적 내용까지 '향약(鄕約)에 담아'내었는데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구휼은 대표적이다. 도덕규범에 가치를 두면서 좋은 것을 권장하는 한편, 잘못된 것을 규제하며 미풍양속에 대한 나눔까지도 권장해왔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협동심을 발휘하며 공동체를 강화해오기도 했다.  

최근 제주도에는 교육계수장이 뉴스에 오를 정도로 불명예를 보여 왔다. 백넘버에서 보여주듯 '지역사회의 불명예'를 대외에 알리며 실추시키는 계기가 돼버렸다. 그것마저 신체장애자(handicap)를 배려해야할 제한구역에서 일어난 일로 도덕에 앞선 법률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예전부터 교육자를 '은사(恩師)로 표현'하며 그림자마저 밟지 않을 정도로 존경심을 보내온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조선조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정승의 교육철학과도 위배된다. '은위(恩威)병행의 글귀'처럼 때로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위엄을 있지 않을 정도로 '사랑의 매를 강조'한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났어도 이와 같은 가치에서 진리처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온당하다. 더욱이 미래세대를 책임져야할 교육계대표로서 불명예를 자초했다면 '사범(mentor)의 사례'를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미래의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로서 난감할 따름이다. 

제주도에는 그동안 시범사례도 없지 않았다. 일제 때에 명문학교에서 교직을 잡았던 K씨는 대표적이다. 제자는 학생시절 은사의 가르침에 감화된 나머지 나중에 통치자위치에 오르게 됐고 이를 계기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은사고향에 대한 사업계획까지 배려하게 됐다. 교육이라는 간접방법을 통해서 고향에 헌신해온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지에서는 계승발전하기는커녕 불명예만을 자초해왔다.  

자리에 앉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을 경우 어떤 일을 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올바른 명제(命題)를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투표만을 의식해온 '잘못된 민주화'가 지역사회의 전통마저 추락시키고 있다. 전통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지역공동체에 불명예만을 부메랑처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현재 과거처럼 고립무원지대에 놓여있지도 않다. 

교육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대표들도 전국대상으로 교류하며 접촉기회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장소(open space)에 놓인 간판'과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지역명예와 연계된 '백넘버를 의식'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시범을 보이는 것이 온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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