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지난주에 있었던 전세계적 이벤트를 꼽으라면 단연 인간 대 인공지능의 경기였을 것이다. 아마도 드물게 온 인류가 한마음으로 선수를 응원했던 경기가 아닐까(구글은 예외겠지만). 공교롭게도 인간계 바둑 최고수가 우리나라의 이세돌 9단이었기에 국내의 관심은 한층 뜨거웠지만 현존하는 최고 바둑기사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지고 나자, 우리 사회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만만하게 전승이거나 한 판 정도는 질지도 모르겠다던 바둑천재가 인공지능 컴퓨터 앞에서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들과 전쟁을 하는 공상과학영화 속 주인공과 오버랩되며 공포심마저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은 앞다퉈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에 기계로 대체돼 사라질 직업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인 의사와 회계사, 법관 같은 직업들도 포함된다고 하면서.

인간이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본격적인 경쟁을 한 것은 산업혁명 때부터일 것이다.

과거 노동집약적 생산양식의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게 되면서 산업혁명 이후의 작업양식은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Modern times)'에 나오는 것과 같은 분업화된 대량생산(mass production)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의 장인(匠人)이 제품생산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공정을 담당하던 과거의 생산방식은 컨베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세부작업으로 쪼개지고 단순화됐다. 수십 년의 경력을 필요로 했던 숙련된 기술자의 작업이 불과 몇 시간 정도의 교육만으로도 비숙련노동자가 담당할 수 있는 단순작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일자리에서 쫓겨난 숙련노동자들은 먹고 살기위해 기계와 싸워야 했다. 1811년부터 영국 북부에서 일어났던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 기계와의 무력 전쟁은 파괴금지법의 시행과 군대에 의한 진압으로 1817년 종지부를 찍었다. 

알파고와의 대국이 끝난 후에 일부에서는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를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얘기하면서 인류재앙의 근원인 인공지능컴퓨터를 파괴해야 한다는 신기계파괴운동(neo-luddite movement)주의자 같은 주장도 일고 있다.

반면 인간은 이제 고도의 창조적 행위만을 하면 되는 새로운 유토피아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낭만주의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온 있는 이 시대에도 많은 직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전화교환수나 버스안내양 같은 직업이 사라진 반면, 과거엔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직업들이 새로 생겨났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위험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방법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수업 시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한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 앞으로 공무원도 사라집니까?" 일순간 학생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학생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물론 데이터의 분석으로 보다 정교한 기계의 판단은 가능해질 수 있을 테지만, 기본적으로 행정이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예외에 대한 인정과 이해관계 사이의 조율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철학적 판단, 인간적 감정 공유 같은 영역은 아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며, 따라서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올바른 가치판단과 공감력을 가지는 행정가가 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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