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잠녀' 7부 문화융성의 핵심으로
5.유산 영역 확대 필요

잠녀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금석문들. 왼쪽부터 지난해 자취를 감춘 허명 목사 선정비, 온평해녀들의 학교 건설과 재건 등 헌신을 기린 공덕비, 울릉도·독도 축가물질중 고향을 위해 기부한 23명의 명단이 적힌 비석

문화재 지정 중요무형 1건.도 지정 1.민속자료 15건
2013년 불턱.해신당 조사 불구 '결론' 내리지 못해
온평리 이어 협재리 공덕비 발견, 허명 선정비는 실종

'제주잠녀문화'에 대한 관심에 비해 문화콘텐츠 구축 작업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제주잠녀 관련 유·무형 문화재 지정현황은 중요무형문화재 1건, 제주도 지정무형문화재 1건,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지정 15건이 전부다. 잠녀문화 세계화를 내건 '해녀축제'도 아직까지 지역 대표 문화콘텐츠로 제 이름값을 못하는 실정이다.

# 문화재 검토 '시간만'
'제주잠녀' 자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나마 제주잠녀문화가 2012년 우리나라 무형유산 국가목록에 등재된데 이어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대상 신청 종목으로 선정되면서 달라지기는 했지만 '문화재보호법'이 발목을 잡으며 슬그머니 뒷전이 됐다.

그중 하나가 불턱과 해신당이다. 힘든 바다 작업을 전후해 잠녀들에게 '안식'과 더불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인식됐지만 문화유산으로 인정 받기 전 개발 광풍에 심한 몸살을 앓았다. 해안도로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시멘트 벽으로, 다시 현대식 시설을 갖춘 '해녀탈의실'로 대체됐다.

해신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얼마 전에도 잠녀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무수물당'이 잘못된 보수로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지정문화재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2013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한 '해녀문화유산조사'보고서를 보면 해신당 73곳과 불턱 34곳 중 현재 이용 중인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곳이라 조사 대상이 됐지 바다 사정에 따라 한 어촌계당 2~3곳, 많게는 5곳 이상 불턱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턱만 최소 200곳 가까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후 꼬박 2년이 지났지만 이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 지역 사회의 버팀목 역할
최근에는 잠녀들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자료로 공덕비 등 금석문을 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잠녀 비중이 큰 마을들을 살피다보면 학교 운동장 구석이나 마을 한복판에 잠수회나 특정 해녀들이 성금을 내 학교 부지를 마련했다거나 마을 공공시설을 짓고 길을 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의 「제주의 해녀」(1996년)에서도 "마을의 중요한 행사가 열릴 때에도 해녀회의 공금은 큰 몫을 맡는다"는 내용을 적었을 만큼 그 역할이 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녀박물관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온평리 '해녀 공로(덕)비'다. 

공덕비에는 잠녀들이 학교바당에서 채취한 미역을 팔아 학교 신축공사와 재건, 전기가설과 같은 일들 했다는 사회봉사와 헌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46년 개교한 '온평국민학교'는 교실이 4개 밖에 없어 심지어 한 교실에 4학년까지 합반 수업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기성회에서 일본에 나가 있는 재일교포들에게 모금하고 재력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학교부지밖에 구할 수 없어 고심하던 차에 잠녀들 사이에서 미역판매 대금을 기부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학교가 지어졌다. 1950년 화재로 목조건물이 전부 소실되었을 때도 잠녀들이 미역판매 대금을 내놔 이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 관리 방법 없어 손놔
허명 목사의 '휼민청정비(牧使許公溟恤民淸政碑)'역시 당시 잠녀들의 사정을 담은 내용으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지난해 자취를 감춘 뒤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제주시 도남동 시민복지타운 내 근린공원 속칭 '해사커리'에 너비 34.5㎝.두께 12㎝.높이 65.5㎝ 규모로 세워졌던 이 선정비는 지난해 6월 지역 문화유산답사팀에 의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 민원이 제기되자 제주시가 행방을 수소문, 허명 목사의 후손이 이를 다른 곳으로 옮긴 사실을 확인해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조치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해당 선정비는 허명 목사가 1814년 4월 김수기 목사 후임으로 부임하던 해 잠녀들이 미역을 캐는데 따른 수세(미역세) 등 각종 잡역세의 탕감을 요구하는 제주 도민들의 요구를 받고, 이에 응하는 문서를 발급해 주는 등 민생을 펼친데 대해 제주도민들이 그 덕을 칭송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문화재도 향토유산도 아니라는 이유로 소홀히 다뤄지며 아쉬움을 사고 있다.

지난해 제주문화원이 '한림읍역사문화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울릉도.독도로 출가물질을 갔다 돌아온 잠녀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확인됐다. 백규상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이 발견한 비석은 1956년 당시 울릉도.독도에 출가물질을 갔던 잠녀 23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또 한글로 '객고풍상/애향연금/성심성의/영새불망(객지에 나가 고생하면서도 고향을 사랑하여 돈을 내놓았으니 성실한 마음과 성실한 뜻을 영원토록 잊지 않으리')로 적고 있다. 

독도연구소 등의 자료를 토대로 1953년 울릉도.독도 물질을 갔던 잠녀들에 대한 내용임을 확인하며 가치가 부여됐다. 이밖에도 중문 등에 유사한 형태의 잠녀 공덕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들을 문화유산으로 관리하자는 주문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승희

박승희씨 만화 제작 한류문화인진흥재단 등 지원
와이진 수중사진작가 현지취재 싱가폴박람회 동행

제주잠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에 발맞춰 제대로 알리기 위한 작업이 활발하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선택도 같은 맥락이다. 만화가 지망생의 '제주도 해녀 유네스코 등재 기원 문화 보존 프로젝트'에 선뜻 지원 결정을 내렸다.

'제주도 해녀 유네스코 등재 기원 문화 보존 프로젝트'는 일본 아마 문화와는 다른 제주잠녀문화를 '만화'를 통해 세계에 알리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박승희씨는 우연히 '잠녀'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후 직접 제주도에서 3개월간 잠녀를 관찰했고 만화 제작에 돌입했다. 오는 8월께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고 만화책으로 제작해 국가적 공감대 형성에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은 박씨의 의로운 작업에 일반과 함께 제작금을 모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 홈페이지(www.human-k.org)를 통해 오는 5월 7일까지 만화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후원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큐 수중작가인 와이진씨가 올해 싱가폴에서 열리는 아시아박람회에 제주잠녀와 참가하는 등 독특한 여성 중심의 해양 문화를 세계에 온전히 알리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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