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가자, 조국의 아이들이여, 영광의 날이 왔다 / 압제자가 앞에 있고, 피의 깃발은 올랐다 / 시민들아, 무기를 들고 줄지어 나가자! / 사랑하는 자유여, 우리의 깃발 아래 승리가 있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다. 이 노래는 본래 1792년 혁명군에 참여한 마르세이유 의용군을 위해 공병 대위 루제 드 릴이 만든 군가였다. 혁명군들이 전선 곳곳에서 부르던 이 노래는 1795년 프랑스 정식 국가가 됐다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뒤 "폭군을 쓰러뜨리자"는 가사 때문에 잠시 금지곡이 되기도 한다. 이후 1830년 7월 혁명 때 되살아나 제3공화국 시절인 1879년 다시 국가로 인정됐다.

'라 마르세예즈'는 전제군주에 맞서는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가사를 담고 있지만 프랑스 국민 누구도 국가로 지정된 것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는다. 혁명정신을 담은 상징성과 역사성 때문이다.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 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떻게 느끼는지, 또 무엇을 바라는지 노래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부패한 사회를 비판하고, 불의에 저항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삶에 대한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노래는 살아있다. 한 사람, 한 지역, 한 나라, 한 시대에 머물러 사라지지 않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놀라운 파급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1969년 8월15일 미국 뉴욕의 전원도시인 베델 평원에서 처음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리치 헤이븐스가 부른 '프리덤'은 저항가요의 상징이 됐으며, 반전운동의 대명사로 불리는 존 바에즈가 1963년 발표한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백제 무왕은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해 온 나라 안에 퍼뜨렸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달래주고 독립군들이 광야를 달리며 군가로 부르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항일노래가 됐다. 

이처럼 노래는 단순히 노래 하나가 아니다. 노래는 인간의 희로애락 등 감성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사회와 체제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시대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어떤 노래는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한다. 

다시 4월이다. 오는 4월3일에는 제6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세번째 국가기념일로 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다. 그런데 지난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에 추념식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잠들지 않는 남도'를 올해 추념식에서도 부를 수 없다고 한다. 

'잠들지 않는 남도'는 가수 안치환이 1988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을 기리기 위해 만든 민중가요로 4·3위령제를 비롯해 각종 4·3행사마다 불려지던 말그대로 '4·3의 노래'였다. 특히 노래가 만들어진 당시만 해도 4·3은 겉으로 드러내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 아픔과 분노를 담은 노랫말들은 도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금 4·3을 상징하는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더이상 부를 수 없게 돼버렸다. 

그런가 하면 화해·상생과 대통합을 위한 도민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올해 추념식에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보수단체들의 4·3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이들 보수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부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사 방침을 밝히면서 도민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잠들지 않는 남도'의 노랫말처럼 여전히 잠들 수 없는 4·3영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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