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선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유권자들을 대표할 후보자들은 과연 해당지역 및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킬만한 신의(信)를 가진 삶의 궤적을 그려온 분들일까? 각 진영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들을 위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사들도 한번 바라보자. 그들은 과연 유권자들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며 살아온 자들인지. 절대 그렇지 않겠지만, "자신과 그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나선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87년 대선이다. 그 이후 선거를 거듭하면서 여론조사 기술과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여론조사는 불신을 넘어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객관성과 신뢰성이 담보돼야 할 여론조사마저 "신의보다는 각자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리는 신뢰가 상실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신의(信義)라는 관념은 선진유가(先秦儒家)에 의해 명확한 윤리사상 체계로 수립됐다. 

동아시아 고대시기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덕윤리와 사회정치 사이에는 따로 구별이 없었다. 개인은 윤리도덕의 수양을 통해 몸소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 등과 같은 윤리도덕규범을 실천했다. 이것은 바로 개인이 정치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는 관료로 종사하며 정치에 종사하는 길을 굳이 거칠 필요가 없었다. 유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성인(聖人)이 천하에 능히 왕의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위에 언급한 윤리규범을 실천하는 '숭고한 도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고대중국의 혼란기였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각국이 패권투쟁을 진행할 시점에서는 이익(利)을 위해서라면 서로 속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신의(信義)가 상실됐던 전국시대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종횡의 설은 비록 반복됐고 백 가지의 실마리가 있었지만, 그러나 대체적인 요점은 합종이라는 것은 6국에게 이익입니다. 옛날에 선왕(先王)께서 만국을 세우고 제후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로 하여금 조빙(朝聘)하면서 서로 사귀게 하고 향연을 베풀며 서로 즐기라고 했으며, 회맹으로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을 함께 하고 힘을 다해 집안과 나라를 보존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가령 6국으로 하여금 능히 신의(信義)로써 서로 친하게 할 수 있었다면 진(秦)나라가 비록 강폭하다고 하여도 어찌 그들을 망하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국시대에 각국은 더 이상 신의(信義)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상대방과의 합작은 이익의 결합으로 판단했다. 전국(戰國)의 잔혹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질서의 시대는 지나갔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선거에 임하는 행태는 마치 전국시대(戰國時代) 상대방을 잘 속이는 것이 곧 승리와 이익을 담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재탕 삼탕인 공약(公約)과 지켜지지 않았던 이전의 공약(空約)들이 난무하고 있다. 공약은 후보자와 유권자의 약속이다. 민주주의의 결정체인 선거에서는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신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선거는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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