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제주도립미술관장·논설위원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은 우리나라 주요 직업 400여개 가운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을 활용한 자동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는데, 인공지능 이후에도 살아남는 직업으로 첫 번째 꼽은 것이 화가다.

인공지능시대에 필요한 능력이 창의력이라든가 창의적인 일자리들로 미술가, 디자이너라는 말은 자주 들었으나 미술의 여러 장르 중 하나인 회화, 즉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별도로 지칭한 점이 특이했다.

게다가 사진을 가지고 마치 사람이 손으로 스케치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스마트폰 앱이 나온지 오래고 이미 구글의 인공지능은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분석해 사진만 입력하면 고흐, 렘브란트, 피카소, 뭉크 등의 작품과 흡사하게 작품을 그려내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의 발명 이후 가장 먼저 사라질 것만 같았던 화가라는 직업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사진기처럼 실물과 똑같이 그릴 재간이 없는 화가들은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형태를 왜곡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갔다. 현대미술은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말에는 '회화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미술에서는 사진이나 영상, 설치와 같은 새로운 매체들에 의해 그림과 같은 회화장르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인공지능시대에는 화가가 살아남는 직업에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니 화가들에게는 고무적으로 들렸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미술가 중에서 특히 화가라고 한데 대해 화가라는 직업과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방향이 어떠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한국전업미술가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의 4%만 창작수입으로 생계가 가능하며, 작품판매한 것으로 가족과 함께 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1%정도라고 한다.  20%의 작가들이 개인전을 못해봤는데, 이들 가운데 경비가 없어서 못했다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작품활동을 한다고 해서 생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화가라는 직업은 경제적 관점으로 보자면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인공지능시대에도 살아남는다고 해서 위와같은 형편이 나아질 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흥미로운 부분은 많은 응답자들이 자신의 생활수준을 중류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미술인이라는 자부심은 전체 예술인의 만족도 62%보다 높은 87%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살아남는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창작활동이 주는 만족감이 다른 어떤 일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3만5000년 전에도 있었고 인공지능시대보다 더한 시대가 와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살아남을 자들이다. 다만 경제적 관점에서의 화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화가라는 데서 그렇다. 

지난 3월 구글이 인공지능으로 재해석한 이미지 29점이 우리돈 1억1500만원에 판매됐고, 화가 겸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인공지능의 드로잉은 1986년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처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창작물들과 인간의 작품이 대결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바둑과는 달리 미술작품은 수치로 승패가 판결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가치판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판단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미술의 가치, 그림의 가치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결코 괴물의 얼굴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 우리를 위협하는 괴물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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