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서귀포지사장

4·13 총선이 끝난지 1주일이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난해 12월15일 이후, 120일간 국회 심판론·정권 심판론, 힘있는 여당 후보론·인물론 등 정치 이슈가 격돌한 이번 총선에서 도내 유권자들은 정권 심판론을 택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오영훈·위성곤 후보가 승리하면서 야당이 4회(17·18·19·20대) 연속으로 도내 모든 선거구를 석권한 것이다. 또 투표율은 57.2%로 4년 전인 19대 총선(54.7%)보다 2.5%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이번 총선은 고질적인 선거 병폐를 여실히 드러냈다.

후보자들이 제시한 지역발전의 전략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 제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4·13 총선은 정책 선거보다는 전직 지사들의 '줄 세우기'가 노골화됐다.

전직 도의회 의장, 전직 시장·군수, 현직 자생단체장 등 전직 지사의 측근 세력들이 특정 정당과 캠프에 모여들면서 외연을 확장하고 세 과시를 했다. 일부 캠프의 경우 '선거대책본부에 이름이 없으면 동네 유지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상대 후보와 정당들은 "도민 사회를 병들게 했던 편가르기, 줄세우기, 패거리 정치, 그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부활하려 하고 있다"며 "이번 총선이 구태정치 심판과 청산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심지어 현직 지사의 총선 개입 논란이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원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거는 등 '원희룡 마케팅'을 묵인, 사실상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실 전·현직 지사들의 선거 개입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95년 민선자치시대 부활 이후, '제주판 3김'이 도정을 좌지우지하며 공직사회는 물론 공기업·유관기관, 각종 단체와 기업에까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만들었다. 

여기에 전·현직 도의회 의장, 전직 대학 총장, 기관·단체장 역시 선거에 참여해 비방과 대립을 일삼고 교수 사회는 후보 정책이 아닌 인물에 지지하는 그릇된 행태를 보이는 등 제주사회 분열에 일조했다.

이 같은 집단들이 선거에 개입하면서 제주사회는 갈등만 증폭할 뿐 이를 조정하거나 중재할 '원로나 어른이 없다'는 씁쓸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병폐는 지난 2014년 원희룡 지사의 당선으로 일정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불거졌고 지사마저 선거개입 논란에 휩싸이면서 도민들의 원로 그룹, 갈등 중재자·조정인 부재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원로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해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뜻한다. 제주사회 각 분야마다 도덕성과 경륜을 지닌 원로는 있지만 비방과 대립을 일삼고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선거판에 올인하다보니 도덕성·객관성·공정성을 인정받는 지역 원로나 원로 집단을 찾기 어렵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각종 갈등이 증폭될수록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을 토대로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갈등을 풀어내는 원로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원로를 존경하고 인재를 키우려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돼야 하는 동시에 교수·전문가 등 특정 집단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존경과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원로 사회가 개인의 정치적 이기에서 비롯된 한풀이식이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여론몰이를 하지 않았나 되물어봐야 할 때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도내 선거구를 싹쓸이 한 것은 정권 심판론도 있지만 특정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고일 것이다.

민선 시대라는 정치 환경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올바른 여론을 이끌어주는 정신적 지주 그룹, 신뢰성있는 원로 그룹은 꼭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또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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