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외국에 오래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할 경우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먹고 싶었던 것은 자장면이고, 하고 싶었던 것은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 

나라마다 목욕문화가 다르다. 스파의 원조인 벨기에는 목욕을 치료로 활용한다. 일본인들은 피로를 풀고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기 위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러 가기 때문에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습관이 없다. 인도는 목욕을 단순히 위생을 떠나 정신의 때를 벗기고 정화시킨다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목욕문화는 시대별로 변천돼 왔다. 신라시대에는 목욕이 신체를 깨끗이 하는 청결에서 마음의 죄를 씻어내는 의식 수단으로 이용됐고, 고려시대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목욕을 했다. 개방 이후 대중목욕탕이 생기면서 청결과 피로 회복이 목욕문화로 자리 잡았고, 찜질방이 생기면서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몸의 피로를 푸는 목욕문화로 진화됐다. 

필자는 매주 토요일 목욕탕을 간다. 목욕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되는데 먼저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할 때 흘러 내려가는 비눗방울이 한 주간 쌓였다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피로 덩어리처럼 보이면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피로 회복의 목욕이다. 

샤워를 하고 나면 사우나에 들어가서 20분 정도 땀을 뺀다. 10분이 지나 온 몸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몸속의 노폐물이 땀방울 속에 섞여 나오는 것을 느낀다. 또한 땀을 빼고 나면 혈액 순환이 잘 돼 몸이 가뿐해 지는 것을 느낀다. 사우나는 육체적 피로 회복뿐만 아니라 한 주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나 잡념들을 말끔히 없애줘 정신적 피로도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치료의 목욕이다. 

사우나를 마치면 때를 벗긴다. 일주일 전에 때를 모두 벗겼음에도 불구하고 이태리타월에 묻어 나오는 몸의 때를 보면서 한 주간 동안 온갖 욕심과 근심 걱정에 찌든 모습들을 돌이켜 본다. 크고 작은 유혹 속에서 겉으로 드러난 큰 실수나 과오는 없었다 하더라도 생각으로 저질렀던 잘못들을 깊이 헤아려 보면서 때를 벗기듯 마음을 정화시켜 본다. 정신 정화의 목욕이다.

때를 다 벗긴 후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마지막 샤워를 하면서 새로 시작될 한 주간에 대한 기대와 다짐을 한다. 

규칙적인 활동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에 모두 이로운 것 같다. 매 주일 목욕탕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짧은 시간이나마 가지지 못했더라면 필자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 피폐해 졌을 것임이 분명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4년 동안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결과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공무원 비리 사건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고 있다. 윤동주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고백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한 주간을 돌아보면서 날로 무디어 가고 있는 자신을 칼날을 갈 듯 갈아 주고, 초심을 회복시키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끼이고 있는 몸과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것이 내가 목욕탕에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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