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발표가 부패한 정치권의 정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정국을 회오리바람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일지라도,인간의 일이기에 실수도 있을 수 있고,그래서 만일 실수로 국회의원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어떻게 보상하느냐?”고 나름대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다.그러나 “국회의원에게 훼손당할 명예가 남아 있기라도 합니까?”라는 반문에 폭소와 박수가 터져나온 것이 오늘의 현실과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민단체들의 정치권 정화운동을 보면서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연상한다.헤로데 대왕이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금을 들여 보수·치장한 당시의 성전은 정치권과 종교계와 결탁한 상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다.흠이 있는 제물은 봉헌할 수 없다는 율법규정을 악용하여 백성들이 정성껏 마련한 가축과 비둘기들을 온갖 핑계를 대어 퇴짜를 놓고 자신들의 상품만 사서 봉헌할 수 있게 함으로써 폭리를 취했다.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로마의 화폐를 봉헌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환전 수수료를 터무니없이 올려 받았다.그것이 너무도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반 대중은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다.구조적 악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채찍을 휘둘러 가축을 내몰아 버리고,환전상들의 탁자를 엎어 버리셨다.실로 무모한 행동이었다.우리의 과거 독재정권 시절이라면 남파간첩으로 조작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몰릴 판이었다.만에 하나 그렇지 않더라도 예수의 핵심 제자 중에 시몬과 유다를 비롯한 혁명당원들이 다수 있었으니 혁명당과의 커넥션이나 음모론이 제기될 터였다.그러나 민중의 지지가 있었기에 훗날을 기약할 뿐 그날은 손을 대지 못하고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누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

 정치인들과 보수세력들은 묻는다.“국회의원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권리를 위임받은 국가기관이다.그런데 감히 대어 들다니,누가 그런 권한을 시민단체에게 주었단 말이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한 것이 그 누구의 사주를 받아 한 일도 아니고,더구나 음모를 꾸민 것도 아니요,단지 부정부패를 없애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양심의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믿는다.낙천·낙선운동은 이 사회의 가장 부패한 부분을 도려내어 정의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국민의 건전한 양심에서 우러난 운동이며,그래서 이 운동이 성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새 시대에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일부에서는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하는데 대통령과 시민단체가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범죄자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나쁜 법이라면 빨리 고치도록 해야지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탈을 쓴 위선일 뿐이다.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이며,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으면 그 법은 존재이유가 없다. 부패하고 무능한 국회가 개정을 못한다면 국민이 그 법을 무시하거나, 저항함으로써 사문화되는 것이다.

 법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법을 만들고,고치고,지키는 것이다.법은 우리의 노예다.우리가 법의 주인이다.이것이 자기들만을 위한 법을 만들어 놓고 국민에게 지키라고 강요하던 거짓된 법치국가에서 참된 법치국가로 가는 기본 원리이다.우리 나라가 참으로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국가’임을 이번의 시민운동으로 증명해야 한다.<임문철·서문성당 주임신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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