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11 전체 몸값, 다른 팀 슈퍼스타 절반 수준

어떤 이는 이를 '기적'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동화'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축구 각축장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만년 하위팀 레스터시티가 창단 132년 만에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레스터는 이번 시즌 개막 당시 우승 확률이 극히 낮은 '언더독'이었다. 현지 도박업체들은 우승 확률을 불과 5천분의 1(0.02%)로 전망했다.

그러나 레스터는 이를 보란 듯이 뒤집었다. 기적을 만들어냈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는 1992년 EPL이 설립되기 전부터 1, 2부리그를 드나들었다. 1928-1929시즌 준우승을 했지만, 1부리그 우승은 없었다.

EPL이 들어선 이후에도 2부리그를 오갔다.

첫 시즌인 1994-1995 레스터는 최하위권 성적으로 강등되며 EPL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2014-2015시즌 빅 무대를 다시 밟는 데에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난 시즌에도 성적은 여의치 않았다.

개막 후 5경기에서 2승2무1패를 거두며 괜찮았지만, 이후 13경기에서 11번을 패하며 하위권으로 처졌다.

4월 초까지는 최하위까지 내려가며 강등 1순위로 꼽혔다. 그나마 마지막 9경기에서 7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런 레스터였기에 누구도 이번 시즌 EPL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EPL은 1994-1995시즌 블랙번 로버스(2부리그)가 깜짝 우승했지만, 그 외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첼시·아스널·맨체스터 시티 등 4팀에만 우승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레스터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스타도 없었다.

2012년 레스터 유니폼을 입은 제이미 바디는 오전에는 주급 30파운드를 받고 치료용 부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축구를 하는 선수였다.

리야드 마레즈는 빈민가 출신으로 그나마 프랑스 2부리그에서 뛰었고, 미드필더 드링크 워터는 맨유에서 4년 동안 2군에서만 뛰다가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미드필더 은골로 칸테는 170cm도 안 되는 키에 프로 데뷔 경력도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몸값은 '싸구려'였다.

2012년 바디의 이적료는 93만 파운드(약 15억4천만원)였다. 이번 시즌 영입된 팀 동료 오카자키 신지(825만 파운드·137억1천만원)의 9분의 1 수준이다.

마레즈는 37만5천 파운드(약 6억2천만원)에 이적했다. 왼쪽 수비수 크리스티안 푸흐스와 미드필더 마크 알브라이튼은 이적료가 없었다.  

주전 멤버 11명의 이적료는 총 2천411만4천 파운드(약 401억원)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맨시티로 이적한 라힘 스털링(4천400만 파운드·731억5천만원)의 절반,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2천200만 파운드)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선수단의 전체 연봉은 800억 원도 채 되지 않아 4천억 원 수준인 첼시의 5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어중이 떠중이'들의 집합소였던 레스터는 축구라는 꿈을 향해 하나로 뭉치며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거짓말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들 미생은 지난해 7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만나면서 최적의 조합으로 탄생했고, '원석'으로 거듭났다.

레스터는 볼 점유율을 높이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좇지 않았다. 20개 팀 중 볼 점유율이 18위(46%)에 그쳤다. 패스 성공률 역시 최하위권이다.

대신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역습으로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했다.

35라운드 중 아스널에 2-5로 패한 것을 제외하면 한 경기에서 3골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무실점으로 막은 것은 15경기나 됐다.

바디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결정력은 역습 축구에 안성맞춤이었다. 마레즈의 재치 넘치는 현란한 드리블에 이은 정확한 슈팅은 금상첨화였다.

바디가 경기 막판 징계로 출전 금지당한 것을 제외하면 주전 대부분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았다. 또 잉글랜드협회(FA)컵 등에서 일찍 탈락하며 EPL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우승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호주 신문인 시드닝 모닝 헤럴드는 "세계가 레스터시티의 동화를 축하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미국 스포츠매체 ESPN은 "레스터의 우승은 1970년 이후 미국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 등 미국 4대 프로 스포츠와 유럽 축구 빅리그를 통틀어 가장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우승 역대 3번째"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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