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감돌아드는 서귀포 앞바다를 내다보며 밀감 나무 가로수 길을 달려 내려와 보목리 입구로 들어서면 남국의 정열을 느끼게 하는 워싱토니아가 길 양옆에서 반가이 맞고, 마을 끝자락의 우람한 재재기 오름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출근 길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보목리 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비석거리 갈림길에서 나는 언제나 설렘을 주는 이 길을 택하여 학교로 향한다. 주의보가 내린 날이면 닻을 내린 배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에 푸른 숲 빨간색 파라다이스 지붕이 아우러짐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어디 그 뿐인가! 교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섬은 도심의 번거로움을 잊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밀면 닿을 듯한 섶섬의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광경 또한 교실에서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파초일엽이 나무 밑 구석구석에서 하늘 향해 날개 짓을 하고 있을 상상만으로도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2년 전 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에는 섶섬 오르기 행사를 꾸준히 해왔는데 작년의 화재 사건으로 그 일도 중단이 됐단다. 아쉽지만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런 보목리 학교에 지난 11월 2일 정책연구 공개 보고회가 있었다. 학부모, 선생님, 아이들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그동안 준비해온 내용들을 전국의 선생님들께 소개를 하는 날이었다. 맑고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손님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뒤뜰의 노오란 은행잎도 한 몫을 거들고 멀리서 오신 선생님들은 대한민국 남끝동 조그만 학교의 이모저모에 찬사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수업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놀이로 시작하였다. 기쁨에 탄성을 지르고, 아쉬움에 안타까워하는 어린이들의 진지한 태도에서 내일의 꿈이 묻어 남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 학습 활동을 한 후 수준별 학습을 전개하였다. 우리 학교의 수준별 학습은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희망과 선택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책임을 강하게 느끼듯 학습 도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학습 의욕을 높여 보자는 측면에서 선생님들이 협의하여 내린 결정이다. "도전 골든벨"의 익히기 문제를 맞춘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 과제를 제시하는데 수학 과제라 해서 문제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마음을 살찌우는 내용으로 과제도 제시한다. 곱셈을 발견해 주신 분에게 편지 쓰기, 수학 시간에 알아낸 점을 마인드 맵으로 표현해 보기 등 다양한 방법의 숙제들은 지겨운 수학에서 재미있는 수학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보목리 학교 아이들은 수학을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묵묵히 마음에 등을 켜고 다만 눈으로만 지켜봐 주신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사계절 아름답고 따뜻한 이 곳을 보목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다 "보목리"라고 부른다. "보목리 사람들"이고 "보목리 학교"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보려거든 이 나의 남끝동 보목리에 와서 보면 그 걸 안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하였다.<고정희·보목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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