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정당별 대통령후보 예비선거가 한창이다.
고어나 부시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됐으나 사정은 그리 여의치 않는 듯하다.특히 공화당 맥케인 후보의 선전은 인상적이다.그는 지난 1일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부시 후보를 누른 뒤 곧장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뛰어 들었다.따라서 앞서 실시하는 델라웨어주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음에도 25% 내외의 지지를 얻어 낸 개가를 올린 것이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게 그것인 양당정치에 염증을 느낀,이른바 무당파가 큰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다.맥케인 후보는 그러한 틈새시장인 무당파를 움직이는 참신성을 선보임으로써 이번 예비선거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이렇듯 미국의 선거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어 보기 좋다.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마치 축제인 듯 흥겨웁게 동참하는 모습이 부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대만의 총통선거에서 연출되고 있다.3명의 총통 후보들이 가장 추악한 폭로전으로 일관하는 등 전형적인 후진국형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사생활 폭로,중국 본토의 선거자금 유입설(대만판 북풍),부정축제폭로전이 중심축은 이루어 과연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감마저 든다.

대만의 선거양태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진흙탕속에서 서로 진흙끼얹기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선거의 본질인 정책과 대안의 발굴은 아예 먼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이따금 희망의 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사람들도 기존의 정당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오염되고 만다.가장 개혁적인 젊은이들도 정치판에 끼어들면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는 현실이다.그것은 우리 정치문화의 미성숙에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할 수 있으나 결국은 우리 국민의 무능의 소치로써 이해할 수밖에 없다.

흙탕물 싸움질에 몰두하다보면 선거의 소비자인 국민들은 안중에 보일리가 없을 터다.그러나 더욱 심각한 후유증은 유권자들을 그들의 편의적인 잣대에 의해서 양분화시킨다는 것이다.사이좋은 이웃사이를 편갈라 쌈박질시키는 행위는 망국적인 선거양태로써 지탄받아 마땅하다.

선거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당사자인 후보자들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미덕을 지닐 일이고,그들의 지지자들도 상대방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한바탕 축제의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도량을 키울 일이다.선거가 끝나면 다시는 그러하지 말자고 사회적인 약속으로 끌어내지만 항상 제걸음에 지나지 않았다.

4월13일이면 우리나라에서도 16번째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된다.15번째의 경험인만큼 초반전부터 예상치 못한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그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오죽이나 변변치 못한 정치판이면,스스로의 자정작업을 이끌어낼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인식하에 그러한 운동은 일정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무위로 끝난 사회적 약속을 실천적 책략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시민연대가 감시자로서의 임무를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따라서 변화는 당위이지 진보 또는 보수라는 편가름은 온당치 못하다.그러나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그럴 경우 국민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투표로써 이를 응징하는 길밖에 업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국민은 지역감정의 조장,근거없는 폭로,비도덕적 인신공격,부정부패에 연루된 사람을 과감하게 도태시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국민은 미래지향적 정책비전과 그 대안이 강물처럼 흐르는 희망의 정치,축제의 정치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김승제·제주도지방개발공사 사장〉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