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산책
5.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고뇌하는 페터 한트케.

불운 속 신경쇠약에 자살한 어머니의 비극
글쓰기로 고통 이해하며 한 '인간'으로 조명
공감과 동시에 거리두기, 갈등 줄일 수 있어

어머니 죽음에 대한 자서전적 에세이

글쓰기 공부를 함께하는 학생들과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마을의 올레길을 지나 밭들 사이를 지나 바닷길로 향하는 동네 산책은 육체의 이완과 더불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자주 산책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동네 어귀에는 양지꽃, 금잔화, 민들레, 방가지똥, 칸나꽃도 보이고, 지령이, 사초, 강아지풀도 보였다. 강아지풀이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걸 보니 고정국 시인의 싯귀가 생각났다. "바람이 분량만큼/허리 굽혀 살아온 그대// 묻지도 않은 말에/고분고분 답하는 그대// 아무 일, 아무 일 없다며/꼭꼭 눈물 삼키는 그대.".

마음 속으로 '강아지풀' 싯귀를 되뇌이며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도 나이가 드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대답하듯이 혼잣말을 자주 하신다. 

이를테면 돌담 사이로 고개를 내민 호박줄기를 보며 "무시거허래 저 고냥에 들언 고생인고"라시며 한숨을 쉬신다. 아마 당신의 삶을 되뇌이며 짓는 한숨이리라. 어떻게 삶이 여기까지 왔는지 돌아보면 까마득하다 싶으신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는 어머니를 위해 뭔가라도 해야만 하 것 같은 중압감을 느낀다. 눈에서 멀어지면 다시 잊어버리고 말 허세 깊은 의무 같은 것이다. 

페터 한트게도 아마 이런 마음으로 「소망 없는 불행」을 쓰지 않았나 싶다. 「소망 없는 불행」은 페터 한트케의 자서전적, 어머니에 대한 에세이 또는 소설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1971년 어느날, 그의 어머니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한다. 쉰 하나의 나이였다. 페터 한트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주쯤 되었을 때,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글쓰기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을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종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의 발로이며, 글을 쓰는 작가로서 예술적 책임을 다하려는 자기방어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고, 그것의 결과가 바로 「소망 없는 불행」이다.

페터 한트케는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머니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어머니가 했던 말들, 행동, 몸짓, 표정, 숨소리, 습관까지도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퍼즐맞추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전에는 알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 파란만장한 삶을 치열하면서도 덤덤히 쉰 할 살까지 버티다 급기야 생을 놓아버린 한 인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생을 놓아버린 이유는 신경쇠약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더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파란만장 삶에도 당당했던 그녀

작가의 어머니는 1920년 오스트리아 케르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71년에 생을 마쳤다. 그녀의 삶은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가난과 전후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인색한 목수의 넷째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며 자랐다. 무엇보다 배음에 대한 욕망이 컸던 그녀는 대여섯 살에 집을 나와 호텔에서 요리를 배우며 생기발랄하게 지냈다. 나치 독일에 합병이 되는 시점에 그녀는 유부남인 은행원과 사랑을 하고 임신을 했다. "다시는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그런 와중에 그녀는 독일인 하사관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가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면서도 "저 여자가 아니면 안되겠어"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간청했다고 한다. 결혼 후, 남편은 전쟁터로 다시 가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시골에서 활달하게 독자적인 삶을 꾸리면서 당차게 살아간다. 

전쟁이 끝나 남편을 찾아갔지만 그는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이었다. 배신감을 느꼈지만 의무감으로 죽는 날까지 부부의 연으로 살아간다. 남편은 술주정이 심했고, 손찌검도 했다. 집안에 전기 제품하나도 없었고 모든 일은 손으로 했으며 알코올 중독인 남편과 아이들 학비를 위해 은행과 관청으로 뛰어 다녔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한마디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아들마저 아버지를 닮아 술을 마셔댔고 자동차를 부스며 결국은 외국으로 가버렸다. 어머니는 두통에 시달렸고 남편마저 폐결핵에 걸려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그렇게 밉고 무덤덤하게 대하던 남편도 나이 들면서 연민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더니 남편이 요양원으로 보내지자 그녀는 갑작스레 병을 앓기 시작한다. 병명은 신경쇠약, 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머니는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점점 병세가 심해진다. 이제 더이상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고통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편지를 아들에게 쓰고, 100정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자살을 준비하던 전 날에도 그녀는 미장원에 들러 매니큐어를 칠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프고 슬픈 한 여인의 인생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치 내 어머니, 우리 주변의 여느 어머니를 보는 듯 가슴이 아프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운을 타고났다 해야 하나. 「소망 없는 불행」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랑마저 선택할 수 없게 하는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한 한 여성을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슬픈 것은 혹사시킨 시간만큼이나 육체와 마음의 병은 한 인간을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작품 속 어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데, 이를 회상하는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세계와 역사, 여성과 어머니와의 소통을 다시 한 번 시도하게 된다. 타인의 죽음이 곧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조건이 된 것이다. 

비록 죽음으로 끝났지만 한 여인의 삶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열정에 감복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녀는 제대로운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신문을 읽었으며, 소설책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자신의 일생을 비교해 보기를 좋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책읽기는 그녀로 하여금 남편을 관대하게 대하게 했고, 순수한 동정심마저 느끼게했다. 또한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오빠들이 추천하는 정당에 투표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투표하는 등 주체적 삶을 가능하게 했다. 병중에도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산책을 하고, 머리 손질을 하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며 기분전환을 하거나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지나간 과거를 보지 않고, 지금, 여기,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의연하게 수용하려고 한 것이다. 

공감능력과 객관적 시선의 조화

어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글을 쓰는 화자인 피터 한트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간적, 작가적 소신과 태도를 반성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어머니의 고통을 내면적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한 인간에 대한 객관적 존재감이 훼손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시킴으로써 작가로서의 정체성 혹은 만족감을 채우는 데 어머니가 소재로서만 쓰여지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로서의 치열함, 공감능력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문에서 그의 인간적, 작가적 태도를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얼마 동안은 그녀가 죽은 바로 그 요일만 되면 그녀의 죽음이 특히나 생생하고 아프게 느껴졌다. 금요일마다 고통 속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고, 또 날이 어두워졌다. 밤안개에 쌓인 시골의 노란 가로등, 더러워진 눈[雪]과 운하에서 풍기는 악취, 텔레비전 보는 소파에 놓여 있던 깍지 껴진 팔. 마지막으로 변기에 물 내려가는 소리, 두 번. 
( (……)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절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에 대한 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다. 하나는 그의 놀라운 공감능력이다. 어머니를 자신과 거의 한몸이 된 듯이 느끼는 공감능력이야말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지가 아닐는지. 그러면서도 놀라운 것은 객관적 거리두기 시선이다. 어머니를 사회적인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가족 간에 잘 안되는 것이 바로 이 두가지 일 것이다. 마치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인 듯 느낄 줄 아는 공감능력과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사회적 인간 '아무개'로 바라볼 줄 아는 거리두기 시선이 자유롭게 넘나들 때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만, 갈등의 문제가 최소화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타인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다면, 뚜렷하지 않은 모호한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날이 잦다면 펜을 잡고 마치 소설속 주인공을 그려내듯이 글을 써보면 어떨까. 또한 누군가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보냈다면 피터 한트케처럼 그를 기억하며 애도의 글쓰기를 해보는 것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책을 읽으니 다시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샘솟는다. 이것이 책읽기가 선물하는 효용이며, 또한 요즘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페터 한트케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의 그리펜에서 태어난 칸트케는 두 살도 못 되어서 베를린으로 이사하는 등 성년이 되기까지 국경을 넘어 여러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첫소설《말벌들》(1966)을 출간하면서 《47그룹》회합에 참석했고 논문〈문학은 낭만적이다〉, 희곡 《관객모독》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967년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상>을 수상했고 희곡 《카스파》(1968), 시 《내부 세계의 외부 세계의 내부 세계》(1969),소설 《긴 이별에 대한 짧은 편지》(1972), 방송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인 바 있다. 

1973년 <쉴러 상>,<뷔히너 상>을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빔 벤더스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배를린 천사의 시》를 썼다. 그 밖에도 <오스트리아 국가상>,<브레멘 문학상>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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