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시인·제주문인협회 회장

제주어가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해녀의 감소와 더불어 제주어의 유실은 시대적인 상황이다. 제주어가 제주도 정신과 정서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사는데 영향이 별로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제주어가 사라질수록 우린 정체성 없는 제주 것들이 되고 말 것이기에 안타깝다.

제주어도 제주방언이라고 종용하는 육지 언어학자도 있다. 전라도 방언, 경상도 방언이라고 하는데 왜 제주어냐고 묻는다. 한국어에 대한 동등한 위치를 점한다는 착각 때문에 힐난하고 싶은 저의가 있음이다. 한국어가 대한민국 국어의 준말이라면 제주어는 제주 지역어의 준말이다. 한국어는 순수한 우리말은 한글이고 제주어는 제줏말이다. 제주어도 한국어의 방언으로 제주도 지역에서 쓴다. 

다만 제주도에 제주어가 중요하므로 '제주어 표기법'을 제주도가 지정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2009년에 발간된 「개정증보 제주어 사전」은 충분히 공청회를 거치고 발간돼 현재의 제주어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제주어는 문서로 전해지질 못하고 구전으로만 이어왔으니 지역에 따라 곤충, 식물, 물고기, 생활풍습까지도 쓰는 말이 다르다. 때문에 제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14세기 언어가 그대로 쓰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는 맥락이다. 

그러므로 「개정증보 제주어 사전」은 빛을 발한다. 반면에 제주어를 한글 문법에 의지해 배우려고 하면 상당히 어렵다. 예들 들어 '고기를 낚다'를 현재 제주도 사람들도 잘 쓴다. 하지만 '궤기를 나끄다'로 평생 쓰고 있는 필자는 높다가 아닌 노프다로, 지프다, 야프다가 상황을 감지하고 마음이 움직인다. '앉다'를 '아지다'로 습득한 필자는 '조침 지 말라'는 말도 편안히 앉으라는 뜻을 헤아리고는 제주어의 특징인 언어절약으로 '엉거주춤 앉지 말라'를 압축했음을 알았다. 

'올레'의 경우, 올레도 원래는 '울내'로, 울타리를 뜻하는 울에서 너와 나를 합친 '우리'가 생겨났으니 울을 제주도에선 돌로 쌓았기에 울담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울타리 안'은 '울내'인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제주도 사람들은 음성모음인 '울'로 해야 할 것을 '올'로 발음해도 알아듣고는 그렇게 사용해 왔던 것이다. 올레라고 쓰든, 올래라고 하든, 울내라고 밝히든 제주어는 다 수용한다는 설정은 기지가 넘친다.

그러므로 제주도에 삶의 터를 잡고 제주어를 구사하는 육지 사람을 육지것이라고 비하하고는 자신도 제주어를 잘 모르면서 '훈도악질'(訓導惡質)하면 말씀이 아니다. 훈도악질이라는 말은 가르친다는 핑계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고역에 빠지게 하거나 이용해 먹는 악질 선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제주어는 서로 도우며 너그럽게 써야 한다.

제주어는 훈민정음에 있는 '아래아'는 물론이고 '쌍아래아'를 쓰는 특별함 말고도 의태어 의성어는 가히 세계적인 언어 보물이다. 가령, 죄 지은 자에게 뺨을 갈길 때 나는 소리를 표준어로는 '찰싹 찰싹' 정도지만 제주어로는 '와작착 와작착'이다. 와작착이 짤싹보다 더 아프다. 왜냐하면 '와작착 와작착'에는 매맞은 삐얌대기가 얼마나 아픈지 '와직와직허다'는 의미까지 내포돼 있음이다. 얄밉게 쳐다본다의 의태어인 '삐룽이'나, 귀찮게 옆에 있다는 의미인 '질그랭이'도 생각할수록 그럴듯하다.

그런 의미로, 제주도 사람들은 다 시인의 DNA를 간직하고 있는 거다. 지워내고 말해도 서로 뜻이 통하니 말이다.

이중섭 화가가 세계적인 거장으로 조명돼 서귀포를 더욱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도 제주도 문화 콘텐츠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주어는 제주 지역어를 줄인 말로 제주도 정신문화유산이다. 방송과 언론, 학교에서도 제주도 무형자산인 제주어를 보전하고 전승하고 있음은 제주도 문화융성을 위한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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