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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뫼백일장 중학교부 산문 최우수] ■ 아버지의 숟가락양지효 사대부중학교 3년
이소진 기자
입력 2016-06-08 (수) 09:22:26 | 승인 2016-06-08 (수) 09:27:29 | 최종수정 2016-06-08 (수) 09:23:51

어제도 아버지의 숟가락은 밥상 위에 올라오지 않았다.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나의 숟가락만 넓은 밥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아무도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해, 놓여지지 않은 아버지의 숟가락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밥을 먹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숟가락이 밥상에서 사라진 건 일 년 전 쯤이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인사이동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셨지만, 엄마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엄마께 구체적인 상황을 여쭤보았고, 엄마는 아버지가 집배원들을 관리, 감독하는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아버지는 우체국에서 일하신다). 

인사이동을 담당하는 분이 아버지께 쉽고 편한 자리를 주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그를 동기에게 양보하는 바람에 근무시간도 길고 어려운 자리로 가게 되었다고 덧붙이는 엄마의 얼굴엔 짜증이 어려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많아진다는 것이 그 당시 엄마께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떠한 걱정도,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의 잦은 부재가 내 마음에 일으킬 파도를, 철없던 그때의 나는 느끼지 못했다.

인사이동이 끝난 후부터 엄마의 예상대로 아버지는 자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시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주일에 거의 그 모습을 뵐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주말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꼭 온가족이 다함께 참석한다는 가족의 규율도 깨진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나는 자주 밥상에 놓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수를 혼동하곤 하였다. 평소의 습관 때문에 밥상에 아버지의 숟가락을 올려놓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입 속에 고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아버지는 점점 더 오래 집이 아닌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엄마는 아버지의 스케줄을 맞춰주기 위해 빵을 자주 사오셨고, 아버지는 밥이 아닌 빵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셨고, 또 끝마치셨다. 그래서인지 밥상에 숟가락을 놓을 때마다 홀로 수저통에 남아 있는 숟가락, 아버지의 숟가락이 그 큰 얼굴을 떨구고 울고 있는 것만 같아 나 역시도 괜스레 슬퍼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거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랑 딱 마주치게 되었다. 원래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고 계실 시간인데, 늦잠을 자서 늦으신 모양이었다. 갑자기, 너무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던 터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이라도 했어야 됐는데 목구멍이 막혔는지 어떤 소리도 나오지가 않았다. 3초 정도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곧바로 휙 고개를 돌리시고는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그게 내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은 건지 그날따라 주인 잃은 아버지의 숟가락이, 아버지의 숟가락이 놓여 있지 않은 밥상의 빈자리가 너무도 서러워서 밥을 먹는 내내 찔끔 눈물을 흘렸다. 어찌 보면 정말 어리석고 철없고 창피한 눈물이었지만, 글쎄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때는 너무 울고 싶을 뿐이었다. 

울고, 울고, 또 울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나를 울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날 그렇게 울고 나서 나는 홀로 부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보며 내 슬픔의 진짜 원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지금까지 나는 아버지의 숟가락을 보며 바쁜 아버지의 일상으로 인해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지, 힘들고 지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근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운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바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닌 격려와 애정의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겠다고 말이다.

그 후부터 나는 '나'자신이 아닌 '아버지'를 1순위에 두고 생활하였다. 치킨 하나를 먹어도 꼭 몇 조각은 아버지를 위해 남겨 두었고, 조금이라도 아버지를 더 많이 보기 위해 더욱 더 일찍 기상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숟가락은 밥상 위에 올라오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정말 놀랍게도 빛을 잃었던 숟가락의 표면이 다시 그 은백색을 회복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숟가락은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라 아버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진실은 숟가락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까지도 아버지의 숟가락은 거의 밥상에 올라오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끔씩 볼 수 있는 아버지의 얼굴엔 숟가락처럼 은은한 은백색 미소가 입가에 살며시 번져 있다. 예전에 봤던 시간에 쫓기던 아버지의 굳은 표정은 이제 추억 속에서만 꺼내 볼 수 있다.

여전히 어린 나이기에 아버지의 숟가락이 밥상에 올라오기를, 아버지가 함께 식사를 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더 큰 소망이 있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숟가락이 영원히 은백색으로 빛나며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지길 다시 한 번 기도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이소진 기자  lllrayo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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