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서귀포여자고등학교 1년

우중충한 갈색 빛깔이 도는, 여기저기 피부가 다 벗겨져 나가버린 나무의 몸통에 마치 한 손에 다 들어갈 것만 같은 작은 아이가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 뒤로 쭉 이어진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우리 같았다. 장난꾸러기 바람이 색색거리는 아이들의 숨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콧노래를 부르고, 저 똘망똘망한 시선들을 받고 싶어 이것저것 광대 노릇을 하느라 땀을 빼지만, 결국은 입김 한번으로 '훅'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터덜터덜 힘없이 제 갈 길을 가버릴 뿐이다.

너도 나도 로봇 흉내를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돌아 볼 때마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멈춘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꾸준히 걸어가고 있다. 흑발의 머리카락은 어느샌가 광대에서 춤꾼으로 바뀐 바람과 함께 리듬을 타고, 하늘하늘한 옷깃은 변덕스럽게 자꾸만 자리를 바꾼다. 완벽하게 정지 하면이 되어버린 '로봇'이 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언제부터가 나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동경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것들을 숭배하고, 부러워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멈춘 사고'를 부러워했다. 인공지능의 사고는 늘 움직이지만 정지되어 있다. 그들은 누군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돌아옴과 동시에 '정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인간은 누군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돌아옴과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두 가지는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는 짧은 문장을 외치는 사이에 인공지능은 '정지'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위를 멈추고, 상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인간은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속으로는 다음에 이어질 행동을 예측함과 동시에 일말의 실수로 잡혀버리고 만 동료를 구할 방법까지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움직임'과 '인간의 움직임'은 다르다. 인공지능은 완벽한 정지 상태에서도 사고가 가능하다. 그들도 충분히 동료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평생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 까닭은 그들이 아직, 진정으로 움직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지하는 것, 그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시작은 '움직임'이다. 인간은 그 자그마한 몸뚱아리를 꼼지락거리며 삶을 시작하고, 인공지능은 컴퓨터 모니터의 0과 1의 영혼 없는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인간의 움직임은 연속적이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노래이지만 인공지능의 움직임은 아직 미완성인, 드문드문 공백이 있어 뚝뚝 끊어지는 노래이다. 나는,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리고 도망가고, 앞서 가는 친구들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때로는 잡히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한, 시간은 많이 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더 이상 인공지능의 흉내가 아니다.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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