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20대 국회가 개원됐다.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 순방 중 과로로 탈진해 링거를 맞으면서 일정을 소화했다는 박근혜 대통령도 귀국한 지 며칠이 됐다. 그런데도 '개원 축하'의 마음이나 '대통령의 수고'에 감동이 일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편 가르기 정치에 신물이 났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총선에서 참패하게 만든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모든 의문의 출발점은 한 곳이었을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내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위해주지 않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한국의 정치지도자. 그런 분은 잠깐 눈을 돌려 나라 밖을 내다보고 지나간 역사도 돌아볼 여유를 가져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쟁자 부시의 참모였던 제임스 베이커에게 비서실장을 맡기고 4년 후에는 재무장관을 맡겼다.

링컨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주변에서 반대하자 "그가 나를 비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방장관으로는 적임자다. 지도자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똑똑한 지도자도 실수를 할 수가 있다.

1961년 4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훈련시킨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가 크게 실패한 사건이 있다. 이른바 '피그스 만의 실패'.

존 F. 케네디는 대통령에 오른 지 석 달 만인 1961년 4월에 이 작전을 승인했다. 쿠바 망명자들을 앞세워 침공에 나선 미군은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 중무장한 쿠바군에게 100명의 사상자를 내고 1100여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피해를 맛봐야 했다. 케네디는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는가!"라고 자책했다.

실패의 원인은 협의과정이 이의(異意)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경직돼 있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용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과 항우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중국역사의 한 페이지다. 일흔 번을 싸워 일흔 번을 모두 이긴 항우는 무예도 출중하고 귀족집안 출신이었기에 자존심도 강했다.

이에 비해 유방은 미천한 집안 출신에다 무예실력도 변변치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포용력에서 유방은 탁월했다. 항우는 참모였던 범증의 말도 믿지 않았기에 그가 떠남으로써 지도력에 결함이 생겼지만, 유방은 자기의 모자람을 알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장량이나 소하와 같은 참모들의 말을 잘 믿고 따름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도자가 모든 걸 결정하고 모든 사람의 거취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이게 바로 비정상이 아닌가.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과잉규제 완화, 잘못된 관행의 시정 등 모두 좋은 취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편 가르기 식 파당(派黨)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내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내 주변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비정상이지 않은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뒤 신하들에게 했던 말을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옮기면서, 우리 정치지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본영에서 지략을 짜고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점에서 나는 장량에 미치지 못한다. 내정의 충실, 민생의 안전, 군량의 조달 및 보급로의 확보라는 점에서 나는 소하에 미치지 못하고,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자유자재로 지휘하며 승리를 거두는 점에서 나는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나를 능가하는 걸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걸물들을 적절하게 기용할 줄 알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천하를 얻은 단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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