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동양화에서 화면의 구도와 위치를 제대로 잡기 위한 배치법으로 경영위치(經營位置)가 있다. 회화에 경영(經營)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은 정해진 화면 공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운영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신중하게 구도를 계획하고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조화롭게 연결해나가는 이 기법은 인간이 환경 변화에 대응해 최적의 방법을 선택하면서 적응하는 과정과 닮았다. 

오랜 시간 환경에 적응하면서 필요에 따라 서서히 개선되던 진화의 모습들이 최근 변화의 주기가 빨라지면서 혁신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도 1년 전 강의에서는 3D 컴퓨터를 얘기했는데 지난 학기에는 드론을, 이번 학기에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기기가 바꿔 놓을 시장을 얘기했다. 

이와 같이 따라가기도 벅찬 혁신의 결과물들은 살아가기에 좋은 방향으로만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방향으로 검증되지 않은 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혁신적 경제활동 방식이 머지않아 일상적으로 이용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빌려주거나 사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자동차를 빌려주는 공유경제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창업기업과 제조공장, 해외와 자국을 연결시키는 매개경제는 자신의 영역이 저절로 확장되면서 어디까지를 내가 속한 산업으로 불러야 할 지 경계조차 애매하게 한다.

구분이 모호함은 영역을 나눴던 경계가 파괴된다는 것이고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기존의 분야들이 서로 융합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뜻한다.

게다가 이러한 혁신은 시장이 원하는대로 저절로 적응해가며 가성비까지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결국에는 새로운 것을 빈번하게 보여주는 혁신조차도 스스로 성장하고 생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의 법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설립된 지 100년 넘은 기업들이 최근 30년 이내에 무너지거나 인수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기업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대가를 이처럼 혹독하게 치른 시대는 드물었다.

이러한 결과는 좋은 것들을 선택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던 과거의 진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 성장이 어려움을 알려준다. 철저한 계획을 통한 실행력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우선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선택한 후 검증하고 개선하는 접근이 적응에 훨씬 유리함을 보여준다. 

물론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부딪치고 검증하고 적응하면서 진화와 개량이 이뤄져야 하는 영역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제주는 가장 큰 변화의 시기에 놓여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경제침체를 걱정하는 가운데 유독 제주는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청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유입인구가 늘고 개발 붐이 일면서 그 어느 때 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반면, 청정한 환경은 훼손되고 교통을 비롯한 도민의 생활환경은 불편하고 짜증스러워졌다. 우리의 탁월한 선택이 절실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다음에 나타날 혁신을 미리 예측하고, 오랜 시간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현명함으로 최적의 방안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을 적절하게 융합하면서 진화와 혁신을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변화에 맞설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모아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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