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날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애매해져 가고 있다. 어느 선에서 전문 화가와 아마추어를 구분해야 할지 모를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가 '나는 전문가다'하면 전문화가가 되는 것 같고, '나는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하면 그가 아마추어인 것을 짐작할 뿐이다. 굳이 구분하는 잣대라면 전자가 직업으로서의 화가일 경우이고, 후자는 취미로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일 것이다. 

예술이란 말 속에는 기술이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예술을 실현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예술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쟁이(장인)라고 불렀다. 이들이 지닌 의식을 장인의식이라고 불러 훌륭한 기술자들을 장인의식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인 장인들이 계급사회에선 동서를 막론하고 폄하됐다. 조선시대 그림에 종사하는 전문가로서의 화원들은 중인계급에서 메꿔졌고 지배계층인 양반층으로부터는 하대를 받았다. 서양에서도 화장품은 좋아하지만, 화장품을 만드는 기술자들은 싫다는 말이 있다.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폄하한 풍조는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동양에선 직업적인 전문화가 외에 문인사대부에 의한 그림을 문인화라고 하여 엄격히 구분했다. 문인화가라면 심심파적에 서화를 즐기는 부류를 일컫는데 이들의 그림을 전문적인 화원들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보다 더 높이 평가된 풍조가 있었다. 전문화원들의 그림을 한갓 손재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릿길을 걸어가면 문득 가슴 속에 산천경개가 떠오른다"는 말은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고답적인 경지를 이름이다. 한갓 손재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았다. 정신의 세계에 앞서 그림이란 손에 의한 기술로서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화원들이 어느 틈에 만권의 책을 독파할 시간이 있으며 어떻게 만릿길을 걸어가듯 깊은 사유의 세계에 빠질 시간이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의기투합한 흥미로운 예가 있다. 20세기 초두 피카소와 앙리 루소의 관계다. 피카소는 첨단을 달리는 전문화가이고 루소는 그 이름에 따라 다니듯 두아니에 루소(세관원 루소) 여가에 그림을 그린 아마추어였다. 세관원이 생의 방편이고 그림은 밤에나 여가에 틈틈이 그린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무지 이들이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이들의 관계는 피카소가 루소의 그림을 좋아하면서 이뤄졌다. 피카소의 화실에는 당시 실험의 기수들이 드나들었으며 이들도 자연스럽게 루소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피카소가 루소를 위해 거창한 파티까지 열어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루소의 작품 가운데 「시인에게 영감을 준 뮤즈」는 이들 모임의 일원이었던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마리 로랑생을 모델로 한 것이다. 피카소와 아폴리네르 그리고 들로네가 루소를 좋아한 것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소박성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자신들에게는 없는 비기교가 그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일반적인 회화의 문맥에서 벗어난 원근법의 무시, 구도의 평면성은 물론이고 사물의 세부에 대한 편집적인 묘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완결성은 일반적인 기술의 영역에선 벗어난 것이다. 이야말로 비기교의 기교이며 기술에 병들지 않은 건강한 정신의 무구함에 다름 아니었다. 전문화가들이 기술에 의해 병들어가고 있을 때 홀로 천상의 경지에서 노는 루소의 그림이 이들을 위무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술에 의해 성립되지만, 또한 기술에 지배됨으로써 타락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공감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형식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경지임을 이들의 관계는 암시해주고 있다. 

기술적인 전문가는 많은데 기술을 뛰어넘는 진정한 예술가는 보기 드문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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