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미술계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제주화단은 개인을 중심으로 여느 해 못지 않게 활기를 띠었다.

 본도 출신 문화기획자 안혜경씨의 ‘제주습지전-목긴청개구리’가 한국문화진흥원 우수기획으로 선정돼 산뜻한 출발을 보인 제주화단은 한 해 동안 ‘여다의 섬’을 입증이라도 하듯 여성 작가들의 눈부신 활약이 두드러졌다.

 습지기행과 토론회 등 기획자의 치밀한 노력으로 ‘기획전의 전범’을 보인 「목긴 청개구리」전은 강요배 고길천 홍진숙 윤동천 임옥상 김세진 등 도내외 작가 9명이 참가해 지난 10·11월 제주와 경기에서 두 차례의 전시회를 통해 습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세종갤러리(관장 양미경)의 ‘하늘의 별 따기’ 기획전도 주목받았다. ‘하늘의 별 따기’전은 작가와 관람객들에게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 전시회였다.

 지난 2월 양승현·승진 자매의 2인전으로 물꼬를 튼 여성작가들의 활동은 신예작가 문숙희·고유나·양은희씨가 3인 드로잉전, 현민자 정민숙 김현숙 김연숙 명연숙 안진희 이상열씨 등 10여명이 도내·외에서 개인전을 가져 제주화단을 풍성하게 했다.

 남성작가들의 개인전도 봇물을 이뤘다. 중견작가 한명섭씨를 비롯해 이왈종 강부언 한중옥 양용방 장은철 오승익씨 등 10여명이 도내·외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강부언씨는 개인전용 갤러리를 마련해 미술애호가들과 거리를 좁혔고, 이왈종씨는 미국전 등 수 차례의 전시회로 올 한해 가장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이씨는 또 제5회 월전 미술상 수상의 겹경사를 누렸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 문봉선씨의 제16회 선미술상 수상, 제주 판화가 김지은씨가 제21회 한국현대판화가 공모전서 우수상을 받은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미술의 역사화 작업도 눈에 띄었다. 올해로 8회째 4·3미술제를 준비한 탐라미술인협회는 광주민미협과 공동으로 ‘한라와 무등-역사의 맥’전을 통해 제주4·3과 5·18 민중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지난 11월에는 청주 민미협과 ‘4·3과 노근리’를 주제로 역사 미술교류전을 가졌다.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 기획전‘제주미협 역사전’은 제주 화단 47년을 정리한 미술전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양창보)이 지난 10월 중순 40개국 424명(국내 78명, 국외 346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제1회 제주국제메일아트전은 미술의 대중화와 정보의 소통을 통해 ‘평화의 섬 제주’를 국내외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해 초 출범한 제주도립미술관 추진위원회의 활동이 전무한 가운데 제주도까지 은근슬쩍 미술관 건립추진을 뒤로 늦춘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예총도지회가 ‘제주지역 문화예술 세미나’를 통해 정식으로 도립미술관 건립사업에 불을 지핀 것은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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