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어머니 산에 핀 '들꽃'

제주에 200종 야생화 자생...관상용·약용 쓰임새 다양
흔해도 존재감 강한 식물...개체수 급감 재조명 시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의 '꽃')

어머니 한라산에서 수천의 고귀한 생명들이 태어난다. 이따금씩 길을 잃고 헤매는 바다 밖 씨앗도 따뜻하게 품어주며 지천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올레길을 걷다가, 오름을 오르다, 해변을 거닐다 눈에 띄는 생명들은 긴 여행의 쉼표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쉽게 지나치기에 아쉬운 여름철 들꽃을 살펴보자

△들꽃의 정의와 여름철 들꽃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에 따르면 도내 자생식물은 2000여종으로 '들꽃' '야생화'의 정의를 별도로 두진 않는다.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풀, 꽃은 물론 나무에 피는 꽃마저 포함하는 종합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경계는 모호하지만 제주에는 사시사철 다양한 들꽃들이 핀다. 특히 강한 햇살과 녹음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여름철 들꽃들이 눈길을 끈다.

장마철에도 만발하는 산수국이 대표적이다.

자생지 훼손 없이 수목 자원으로 가꿀 수 있는 데다 꽃의 색깔,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원예종으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꽃들이 핀 길가. 숲길 등은 자연스럽게 촬영지가 된다.

제주달구지풀은 여름철 한라산 백록담 인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산지역 등 특정 지대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꽃이 가진 진한 자줏빛은 일품이다. 희귀하다는 특성을 가진 들꽃으로 도내 문인들의 작품 소재로 으레 등장한다. 

'닭의 장풀'은 '닭의 벼슬을 닮은 풀'이라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일반적으로 농경지 등에서 잡초로 인식돼왔지만 대나무처럼 생긴 줄기 끝에 시원스런 느낌을 주는 파란 꽃을 피운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꽃을 피우는 대나무'로 비유해 감상할 만큼 고상한 매력을 갖고 있는 꽃이다. 

△조상들의 들꽃 활용도

아무데서나 피지만 활용도로 따지면 풀 한 포기 버릴 수 없다. 들꽃은 오랜 과거부터 관상용에서 출발해 식용, 약용 등 다방면으로 쓰임새가 많았다.

연못·도랑가에서 자라는 창포는 단오절(음력 5월5일) 국내를 포함해 동아시아에서 두루 쓰였다. 향이 삿된 기운을 내쫓는다고 해서 여성들은 외출하기 전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한방에서는 건위·진경·거담 등에 효능이 있어 약재로 이용됐다. 

익모초도 조상들이 약재로 이용한 식물이다.

무월경, 생리통, 산후 자궁 수축 불량으로 출혈, 복통이 있을 때 익모초는 어혈을 제거하고 자궁 수축을 돕는다. 또 이뇨 작용이 있어서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몸이 부었을 때 유용했다. 

엉겅퀴는 가을에 나물로 무쳐먹기로 잘 알려졌지만 사계절 공통적으로 뿌리 부분은 엿으로 먹을 때 사용됐고 위에 통증이 올 때 다려서 마셨다.

△멸종을 부르는 인간의 이기

함부로 꺾고 채취하는 인간의 이기로 들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자연환경생태정보시스템에는 자연적·인위적 위협 요인으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멸종위기종Ⅰ과 학술적·국제적으로 보호 가치가 높은 멸종위기종Ⅰ등 모두 27종이 등록됐다.

한란은 식물종 자체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됐다. 청초하고 우아한 모습을 갖추면서 동양란 중 가장 진귀한 식물로 사랑을 받아왔지만 노루가 잘 먹고 오랫동안 관상용으로 채취되면서 멸종위기에 놓였다.

조선 시대 임금님 진수성찬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수생식물인 '순채'도 멸종위기식물이다. 산업화에 따른 개발로 습지 생태계가 파괴되면서다. 도내에서는 선흘리 동백동산 먼물깍에서 수면위 순채와 올방개가 어울린 경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국내에서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만년콩은 서귀포시 돈내코계곡 일대에 10여개의 극히 한정된 개체만 자라고 있다. 약용·관상가치가 높아 무분별하게 채취되면서 멸종위기에 이르며 보호 대책이 절실한 종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한라산연구소 등은 지난 2011년부터 만년콩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고 생육시키며 도민사회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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