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산책
8. 본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책 「부끄럼쟁이 바이올렛」 「민들레는 민들레」

「부끄럼쟁이…」 가면보다 강점을, 비난보다 인정을
어디에 피어있든 너는 아름다워 「민들레는 민들레」

한 아이가 있다. 이제 막 파마를 하고 엄마와 미용실을 나서는 길이다. 저 멀리서 엄마 친구 가 아이와 엄마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바삐 다가오시는 것이 보인다. 이런! 아이는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엄마 등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엄마 친구의 레이더망에 잡힌 이상 도망갈 방법은 없다. "어머- 지영이 파마했구나- 너어무 예쁘다~" 엄마 친구는 온 거리가 울리도록 찬사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엄마는 왜인진 모르겠지만 파마의 과정을 상세하게 덧붙인다. 아이는 "감사합니다"도, "안녕하세요"도, 그 어떤 말도 할 타이밍을 찾지 못한 채 발 밑에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애꿎은 땅만 발로 탁탁 찍어댄다. 수줍음에 가득 찬 내 어릴 적 기억의 한 장면이다. 

'수줍음'을 다시 생각한다

아이들은 수줍다. 사람들 앞에 설 때 수줍고,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 말을 걸 때도 수줍다. 심지어 엄마 친구에게 관심을 받을 때도 수줍어 쥐구멍을 찾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맞는 환경에 수줍음을 느끼고, 주목을 받을 때 얼굴을 붉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엄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몸을 비비 꼬는 자신의 아이를 보면 엄마들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니"로 시작하는 푸념을 하염없이 늘어놓는다. 십중팔구는 부모를 닮았을 텐데 말이다. 

공개수업이 있는 날엔 내 아이가 발표를 못했음을 한탄하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어김없이 들린다. 손을 번쩍 들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정답을 이야기하는 아이가 이상하게도 뭇 엄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발표를 잘 하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목도한 엄마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진다. 웅변학원을 보내야 하나, 토론 수업에 참여시켜야 하나. 그러면서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수줍음 극복하는 법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거나, 그에 관한 책을 찾아본다. 그런 엄마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림책도 여러 권 있다. 엄마들은 이런 책을 찾아 아이에게 읽어주며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마지막에 꼭 덧붙인다. 

수줍음에 관련된 그림책은 대부분이 수줍음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진다. 책 속의 아이들은 모두 수줍음을 극복해내야 할 문제적 아이들이고, 주위의 도움, 격려, 혹은 나 자신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완벽하게 수줍음을 타파한다. 
물론 수줍음을 극복하면 살기가 편해진다. 엄마들이 자신은 그렇지 못했음에도 아이들에게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요구하는 것도, 자신이 수줍은 인생을 살아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 일거다. 

하지만 나는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수줍음이 반드시 고쳐야 할 잘못된 행동인건가' 라고.

자신이 설 수 있는 위치에 서기

「부끄럼쟁이 바이올렛」의 주인공 바이올렛도 우리 엄마들이 걱정하는 그런 수줍음 많은 아이다.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는 것이 두려워 수영장에서도 물을 튀기지 않도록 살살 수영을 하고, 도시락도 삼키는 소리를 내지 않으며 먹었다. 합창대회 참가나 파티에서의 어울림도 물론 거부했다. 학교생활에서도 때때로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들의 시선을 받거나, 장난꾸러기 어윈의 놀림을 받으면 두드러기가 난 듯 온 몸이 가려워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만다. '아무한테도 안 보일 만큼 작아져 버렸으면!'

하지만 이 책은 바이올렛의 강점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내 표현하고 있다. 바이올렛은 수줍은 대신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잘 파악하는 관찰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그래서 바이올렛은 다른 친구들은 잘 모르는 곤충의 생김새나 울음소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유명인들의 특징적인 목소리를 곧잘 흉내 내곤 한다. 

바이올렛의 학교 선생님은 이런 바이올렛의 특성을 잘 파악해 일부러 바이올렛을 등 떠밀지 않는다. 반 전체가 하는 연극에서도 바이올렛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출연하게끔 배려를 해준다. 가려움증을 느낄 새 없이 바이올렛은 흥겹게 연극을 준비하고, 특유의 꼼꼼함으로 다른 친구들의 대사까지 모조리 외워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놀리던 어윈이 무대 위에서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버리자, 무대 뒤에서 어윈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신 대사를 읊어주는 재치도 발휘한다. 바이올렛의 재기 넘치는 행동으로 연극은 무사히 마무리 되고 친구들의 격려 속에 바이올렛은 자신의 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느낀다.

'할 수 있어'라는 말로 아무리 용기를 북돋워주어도 절대 무대 위에 오를 수 없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인 바이올렛에게 선생님은 아이의 그릇에 맞는 역할을 건넴으로써 아이에게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수줍음은 비난 받아야 할 나쁜 행동이 아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이 부각될 때 본인은, 혹은 그 가족은 크게 염려하지만, 대부분의 타인은 나의 수줍은 모습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스스로를 타자화해 자신을 바라보는 습관만 버린다면 그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니체는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수줍음을 가리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하고 가면을 성공적으로 장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불안을 숨긴 채 맺는 대인관계가 안정적일리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진 수줍은 얼굴, 온화한 성품, 사려깊은 행동과 조심스런 말투는 그 사람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그것을 자신이, 그리고 가족이 인정할 때 그가 가진 아름다움은 비로소 빛이 날 것이다. 

민들레를 민들레로 사랑하기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민들레는 민들레」는 수줍음에 관한 책은 아니다. 긴 여백을 품고 민들레 본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그림책이다. 

책은 조용하게 외친다. '민들레는 민들레, 싹이 터도 민들레, 잎이 나도 민들레, 꽃줄기가 쏘옥 올라와도, 민들레는 민들레…' 도로의 틈에 피어도, 지붕 위에 피어도, 하나여도, 둘이여도, 들판 가득 피어도, 민들레는 민들레라고 말하고 있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풍경의 사실적인 그림들과 나긋나긋 이어지는 이야기가 민들레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마음 깊숙이 심어놓는다.

작가가 노래하듯, 민들레는 민들레다. 시끄러운 도로위에 피어있든, 담장의 틈을 비집고 피어있든 민들레는 민들레로 살아간다. 그 민들레를 느끼는 것은 민들레가 피어있음을 알고, 민들레 앞에 앉고, 민들레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 그만이 민들레가 여기 존재하고 아름다운 꽃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너는 왜 이런 곳에 피었느냐고, 너는 왜 장미가 아니냐고 따지고 든다면 지금 이순간의 민들레가 가진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 또한 사라진 다는 것을 우리는 책의 따뜻한 그림 안에서 알게 된다. 

오늘도 나는 한번쯤 사람들 앞에서 수줍을 것이고, 내 아이도 학교에서 쉽사리 손을 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책망해 극복하자 주먹 불끈 쥐지 않는다. 파이팅의 주먹보다, 괜찮다고 쓰다듬는 인정의 손바닥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 숨은 바이올렛에게서도 빛이 남을 느끼고, 말없이 피고 지는 민들레에게도 나비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빼버릴 것 없는 모든 존재의 가치를 큰 가슴으로 받아들여 본다. 내가 아름답다는 것을, 내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내가 먼저 알아주지 않는다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