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채 디케이서비스 대표이사·논설위원

본사 이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주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긴 했지만 30대 중반까지 익숙했던 도시의 삶을 버리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역에서의 새로운 출발은 필자를 포함한 가족에겐 즐거운(?) 두려움과 낯섬으로 다가왔었던 기억이 난다.

본사 이전이 확정되기 전만해도 제주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보단 언젠가는 육지로의 귀환(?)을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로의 길고 긴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며,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도시에서 누리지 못했던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 전원주택에서 수년간 살기도 했었고, 제주의 멋진 자연풍경과 함께 제주인의 따뜻하고 순박한 정을 느끼며 살아온 지도 어느덧 12년째다. 

12년이라는 긴 여행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멋지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육지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일과 삶의 조화로운 균형을 제주에서 비로소 느끼고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의 삶은 항상 고달프고 힘들었던 기억과 더불어, 평일은 개인과 가족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은 채 일의 노예가 돼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주말에는 축 늘어진 어깨를 누르는 피로라는 녀석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삶은 육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름 워크홀릭이라고 자부했었지만 이전의 생활보다 짧은 시간에 중요한 업무를 마무리할 정도의 근무 환경에 깜짝 놀랐으며 회식 후 이른 귀가 시간처럼 제주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무척 더디다는 것에 경이로웠다.

아름다운 한라산, 푸른 제주 바다, 자연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곶자왈 등과 벗삼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했으며, 오랫동안 만들어진 운치가 있는 제주의 길과 함께 하는 출퇴근 또한 감사했다. 

특히 삭막했던 도시의 꽉막힌 도로를 따라 출근하고 아름다운 노을 대신 자동차의 빨간불로 물든 거대한 도로를 보며 퇴근했던 것과는 달리, 고즈넉이 아름답게 드리운 가로수를 따라, 예전의 선인들이 걸었던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출퇴근을 하다 보면 가끔은 한라산의 웅장함에, 때로는 푸른 바다의 위엄과 검은 하늘을 수놓은 고깃배의 화려한 불빛에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곤 했다. 

너무 흔하고 당연히 있어야할 곳에 있는 것들이라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움이 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오늘 날의 제주는 어떠한가? 

고즈넉하며 아름답게 굽어진 제주의 길은 교통량 해소라는 이유로 곧고 넓은 시커먼 도로로 바뀌었으며, 동시에 아름다운 가로수와 이름 모를 새소리, 제주의 풍경을 느낄 수 있던 작은 여유도 사라지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특색없는 주택과 건물들이 비어있는 공간에 불쑥불쑥 들어서고 있으며, 주위의 풍경이나 소중한 제주의 미래 가치는 뒤로 한 채 획일화 돼가는 제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흔한 도시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제주의 인구가 늘어나고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발전, 그리고 삶의 편리함을 위한 개발은 중요하지만 개발이 최고이자 최선이라는 '묻지마'식의 개발은 난개발이라는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제주의 소중한 자원과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균형잡힌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과 아름다운 섬 제주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