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 이사대우·정치부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2년전 취임 당시 민선6기 도정 운영 원리로 천명한 '협치'(協治)를 다시 꺼내들었다. 내달 1일 취임 2주년을 앞둔 원 지사는 28일 민선6기 취임 2주년 언론사 합동인터뷰에서 "협치의 초점은 관(官) 위주로 일 하는 방식에 민간 참여 및 주도권을 대폭 강화, 창조적 행정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 지사는 이어 "행정의 일 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협치를 추구하고,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제주 실정에 맞게 인사·정책·정치분야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가 이처럼 남은 임기중에도 '도민 중심의 수평적 협치행정 실현'을 재차 강조, 공직사회의 일 하는 방식이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원 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공직사회 보다 앞선 민간부문의 에너지가 도정 정책의 입안·결정은 물론 집행 과정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도민의 힘으로 더 큰 제주를 만드는 진정한 협치를 실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공직사회가 실천한 협치행정을 돌아보면 정책을 입안·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도민들과 대립,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미흡하거나 제자리를 걷는 모양새다. 농가의 반발로 무산된 비상품감귤 가공용 수매제도 폐지가 대표적 사례다. 정책의 소비자인 농가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성급히 발표함으로써 타당성을 놓고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 도민역량만 고갈시킨 부작용을 낳았다.

지하수 보전 및 난개발 방지를 위해 공공하수관로가 설치되지 않은 읍·면지역 건축 규제의 도시계획조례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제주시이장단협의회는 제주도가 예산부족으로 공공하수관로를 설치하지 않은 하수처리 미구역의 읍·면지역 건축을 규제하면 소규모 주택 조차도 지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공공하수관로가 없어도 읍·면지역에 개인오수처리시설을 갖추면 주택신축을 허용했던 조례를 일방적으로 변경함으로써 농어촌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했기 때문이다. 원 지사가 읍·면지역 실수요 소규모 주택에 대한 예외규정 마련을 담당부서에 주문, 주민 반발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지만 도의회의 조례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공직사회가 정책을 입안·결정하면서 주민과의 소통·신뢰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남은 2년의 협치행정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민선6기 출범초부터 도민 참여 활성화 등 도정 전반에 협치가 스며들도록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과거의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을 버리지 않은 결과 도민들이 느끼는 협치행정 체감도 역시 낮기 때문이다.

도민들의 낮은 체감도는 제민일보가 지난 2일 창간 26주년을 맞아 실시한 도내 전문가 209명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제시됐다. 원 도정 출범후 2년간 가장 나빠진 9개 항목 조사결과 협치행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도민 소통이 14.2%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대의회 관계 22.2%와 사회통합 12.6% 등 소통관련 항목을 합하면 나빠졌다는 응답률이 49%로 증가했다.

원 지사가 강조한 협치행정이 남은 2년간 성과를 거두려면 주민을 정책결정의 주체로 삼는 공직사회의 생각·행동이 실질적으로 변해야 한다. 조례 제·개정 과정에서 정책 입안후 주민의견을 듣는 입법예고 절차도 협치에 맞게 대수술이 필요하다. 제출된 주민의견의 반영과 미반영을 결정짓는 주체가 공직사회이기에 도민들의 생각이 스며들 여지가 미약하다. 협치행정에 걸맞은 정책설계를 위해서는 입안 단계부터 이해관계자·전문가 등이 참여한 토론으로 부작용을 파악, 최소화한후 입법예고 절차를 진행하는 변화가 요구된다. 비상품감귤 가공용 수매제도 폐지나 도시계획조례개정안처럼 제주도 정책이 감귤혁신 및 지하수 보전의 의도한 효과를 가져오기 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지난 2년을 협치행정의 시행착오가 아닌 반면교사로 삼아야 남은 2년간의 협치행정이 제대로 설 수 있다. 공직사회의 능력에는 잘못을 고치는 반성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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