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논설위원

5월 말 제주특별자치도 도시계획위원회 해외 시찰을 다녀왔다. 그 일정 중 깊은 동감을 이끌어낸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공무원과의 대담은 지금까지도 긴 여운을 주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현재 제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오슬로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도시는 비대해지고 있다. 인구집중과 도시팽창에 따른 교통, 주거, 쓰레기 문제는 오슬로와 제주가 동시에 겪고 있는 문제다.

그런데 오슬로와 제주는 이 문제를 보는 시각과 방식에 차이가 있다. 

오슬로는 인구집중과 도시팽창을 결코 위기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위기가 아니라 도전과 기회로 본다. 도시문제를 위기로 보는가 아니면 기회로 보는가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런던이 급격히 팽창할 때 전문가들은 이를 위기로 봤다. 특히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곳곳에 철도역과 철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 저기 건설된 철길이 꼬이기 시작하자 교통 상황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도시 문제를 위기로 보는 것은 당장의 해결방법만을 찾게 된다. 급한 위기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면한 문제는 피할 수 있지만 더 큰 수렁으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단적인 예가 현재 제주의 주택과 부동산 가격상승이다. 

도시 문제를 도전과 기회로 볼 때 훨씬 장기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과 방법을 모색한다.

오슬로는 인구와 도시가 팽창할 때 도로와 주택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재생을 아우르는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시민들과 공유했다. 2010년 수립된 비전과 전략은 2030년을 청사진으로 만들었으며, 그 비전은 스마트, 세이프, 그린이었다. 스마트한 도시, 안전한 도시, 친환경 도시를 내세운 것이다.

이 비전을 위해 수립된 2030전략은 블루, 그린, 히스토리(역사)였다. 블루는 바다에 면한 오슬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시민들의 일상이 바다와 해안가에서 공유되는 것이고, 그린은 도시에 풍부한 녹지를 만들고 활용해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것이며, 히스토리는 도시의 역사와 공유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오슬로의 아케브리게 지역은 과거의 슬럼화된 항만 지역이었지만 이 비전과 전략으로 추진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다. 노후됐지만 역사성이 있는 공장과 창고 외관은 최대한 보전하고 해안이 면한 1층은 카페와 식당을, 내부는 상점을 둬 활기 넘치는 가로를 만들었다. 2층 이상은 주거를 만들고, 건물 뒤 지역은 유치원 등 교육시설 마련해 이 지역의 도심공동화를 방지했다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오슬로 시청 공무원은 단호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도시재생은 역사만으로는 안된다" 그가 이 말을 던진 이유는 도시재생에서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역사와 공유되는 공간이란 역사적인 건물이나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과거에 사라진 유적을 복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의 역사적 흔적을 존중하면서 그 주변을 시민들의 일상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제주의 상황을 돌아보자. 탐라문화광장과 분수대, 관덕정 광장 복원, 원도심 재생 등 많은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 모두를 아우르는 도시와 도시재생의 비전과 전략은 무엇인가? 있다면 시민들과 공유되고 있는가? 우리가 궁금한 것은 마구 쏟아지는 정책과 사업비가 아니다. 시민의 일상이 배제된 도시재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것이 오슬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