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요즘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으로 일컬어지는 일부 인사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 가운데 특히 그들의 '말'이 더욱 큰 반향을 부른다. 

그들이 늘어놓는 변명과 해명에는 예외 없이 '취중실언(醉中失言)'이 등장한다. 물의가 야기되면 으레 '만취 상태에서 한 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송하단다. 참 쉽기도 하다. 말이란 소리로 표현되는 또 하나의 인격임을 정녕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생각과 말은 본디 한가지로, 다만 그것이 안과 밖 어디에 있나가 다를 뿐이다. 심지어는 잠꼬대마저도 사실(事實)이나 사유(思惟)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보거늘, 두 눈 똑바로 뜨고 한 말이 '생각 없이 한 말'이라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다만 과음을 했을 때 다소간의 과장은 있을 수 있음을 서로 양해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취중실언에 대해서는 이외로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이 전략은 여전히 유용한가 보다.    

안타깝게도 요즘의 화두는 교육부를 향한다. 정부의 어느 부처인들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려서야 될까마는, 그중에도 특히 교육부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관·역사관 정립, 건전한 가치관·바람직한 인성형성, 민주주의 정신 구현·민주시민 육성, 민족정기 함양·조상의 얼 계승발전 등 요컨대 국민의 '정신적 지향'을 올곧게 세워나갈 막중한 소임을 지닌 부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처의 공직자들에게 건전한 인격과 청렴성 등이 한층 더 요구되는 것은 당위이다. 

이러한 교육부에 정말 그럴 수 없는 인사가 마침내 일을 내고야 만 것이다. 이 나라 교육정책의 기획을 총괄한다는 정책기획관이 설화(舌禍)를 유발한 것이다. 발언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국민의 99%인 대중은 그저 배부르게만 해 주면 되는 개·돼지다. 사회가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위 1%를 위한 신분제를 공고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대변인 등 교육부 간부를 대동하고, 한 언론사 부장 등 간부와 출입 기자를 초청한 음식점에서란다.

이에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망언이라고 비난해댄다. 그런데 그는 국회에 불려 나와서 취중실언이었다며 전전긍긍한다. 아니, 실언이었다니! 이렇게 정연한 논리에 자기 철학을 곁들여 심지어 기자단의 항의에 강변으로 맞섰던 그가, 하루아침에 그게 실언이었다며 전전긍긍이라니. 참으로 비굴하다.

비록 큰 착각이나마 자신이 정녕 국민의 1%인 신분임을 자처한다면 국회 아니라 더 높은 데 설지라도 그날의 그 주장을 재확인하고, 이런 나를 용납할 수 없다면 굳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노라고 당당한 태도를 취했어야 옳다. 필자는 이를 망언이나 실수라는 말로 호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건 결코 망언도 실수도 아니라, 어쨌거나 그의 철학이요 인생관으로 봐야 한다. 

대충 그의 프로필을 보니 약관 23세에 행정고시에 패스하고 교육부에서 초급간부로 일하면서 고속승진을 해오던 중 정부부처의 오랜 폐습이라 할 소위 엘리트육성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세금 가지고 파견형식으로 3년간 미국 가서 박사학위 따고 온다. 그후 장관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됐다가 교육부로 복귀한다. 그리고는 올 3월부터 정책기획관이라는 고위직에 앉은 47세의 젊은 엘리트다.

사실 99%의 대중은 참 아까운 인재라며 그의 퇴장을 아쉬워할만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주위엔 '영리한 바보', '무식한 지식인'이 없지 않음을 본다. 이 관리도 자신의 착각처럼 진정한 국민의 1%가 맞다면 어떻게 그런 사고를 지닐 수 있으며, 다른 사람도 아닌 기자들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할 수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런 인사야말로 국민의 상위 1%는 언감생심이고, 되레 하위 99%에 속하는 영리한 바보요 무식한 지식인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안타깝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