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 논설위원

후대는 2016년을 이전 30년 무렵 기간을 지배해온 상인 계급 중심의 시장 자유주의가 타의에 의한 격변을 맞은 시점으로 평가할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와 유럽권의 반정치 세력의 득세, 영국 대중이 주도한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의 시간 문제일 뿐인 몰락, 지배적 문명 세력권의 주변부로 밀려난 특정 종교 세력의 연이은 테러 행각 등 바야흐로 상인 집단이 정치 및 행정 엘리트와 손잡아 펼쳐온 '평평한 세계(the Flat World)'는 그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앞으로 기대와 열망을 접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필자는 각국의 중앙은행과 경제부처들이 주도하고 있는 양적 완화류의 경기 회복책은 통화정책과 재정을 동원한 자산 가격 떠 받들기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에 심정적·논리적으로 동의하는 쪽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와 국가가 지원하는 시장이 나서서 있는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 및 금융 자산 등의 가치를 지지해주는 것인데, 이는 이를테면 시황이 불리할 때 하방 위험을 헷지해주는 풋옵션을 정부가 나서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쉽게 말하면, 국가와 지배세력이 위기라며 목청을 높이는 와중에 뒤로는 은근 슬쩍 있는 자들이 겪게 될 임박한 손실에 방어막을 쳐주고 있는 것이다.

얼핏 정치적으로 날선 주장인 것처럼 받아들일 독자도 있겠지만, 이것이 우리 시대 시장과 사회 지형이 겪고 있는 실상의 본질에 가깝다. 국가 권력과 손을 맞잡은 상인 세력이 주도하는 이 세상의 질서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윤의 개인화, 손실의 사회화'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과 세계은행 부총재 등을 지낸 바 있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 스티글리츠 교수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2차대전 종전뒤 적어도 선진 경제권에서 성장한 이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했었다. 대체로 그러한 기대는 1970년대에 글로벌 경제체제가 겪은 잠시의 난관기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현실과 부합했다. 그간의 통계를 보면 1993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선진 경제권 25개 국가의 가계 가운데 실질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그룹은 단 2%에 지나지 않았다. 인류는 유사 이래 큰 전쟁과 갈등 없이 이 정도의 풍요를 생산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시기를 더욱 충실하게 반영하는 숫자를 보면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글로벌 부의 성장을 되짚어 본 매킨지의 최근 스터디에 따르면 25개 선진 경제권의 가계들 가운데 65~70%에 이르는 가계의 실질 소득은 변동이 없거나 떨어졌다. 이를 머릿수로 따지면 무려 5억4000만명에 달한다. 글로벌 정치·경제·사회의 안정적 질서를 유지해온 계층까지 위기 국면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각국 정부는 재정 이전과 세율 삭감을 통해 대세를 제어하려 해 왔지만 전체 가계 가운데 1/4 이상의 가처분 소득은 정체 상태이거나 떨어졌다.

반면에 최상위 계층으로 소득 및 부의 집중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심화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GDP 중에 임금 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국가 정책이 기업과 자본의 긴급한 필요와 요구에 먼저 시선을 두고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장차 이 해결 난망해 보이는 현실이 미래에 던져 줄 여파는 부모 세대로부터 교육과 부의 이전 혜택을 덜 누린 불운한 계층에게 집중될 것이다. 학업과 시간제 노동을 병행하거나 비 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것은 감정적 포기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인 셈이다. 국가와 시장 주도 세력이 이러한 실상을 부인하지 않고 온전하게 인정할 때 어렵지만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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