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산책 13 이정규 「우주 산책」

지금은 다로타 부족으로 불리는 북미 원주민 수(Sioux) 족의 세계관을 표현한 그림.

'천문학과 나'에 대한 성찰적 물음
희생과 서로 돕는 구조 다르지 않아

여름 밤하늘의 기억

지금처럼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 밤까지 무더운 날이면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시원한 곳을 찾아 베개를 들고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자리한 곳은 옥상에 있는 평상이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형제들이 하나 둘 모이는 날도 있었고, 엄마랑 끝까지 누워있던 날도 있었다. 가끔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먼저 자리하셔서 꼽사리 끼어있다 오래있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어느 계절보다 여름 밤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유난히 많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서 그 당시 유일하게 알던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을 찾고, 그 별 어느 끝을 따라 가장 빛나는 별을 찾으면 그것이 북극성이었다. 형제들이 가끔 들려주던 별자리는 이름부터 어려워 외우기보다 눈만 따라갔다. 그렇게 스르르 한잠 들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깨면, 입 돌아갈까 부랴부랴 옥상을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도 옥상에서 별을 보며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먼저 찾았다는 이유로 잘난 척을 하며 더운 여름 낄낄거렸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어린 시절 밤하늘을 함께 보던 우리들은 요즈음 가끔 연락을 하며, 이제는 여유 없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중에 무심결에 나오는 말이 외출을 하려다 가스 밸브를 잠궜는지 확인하려 다시 갔다는 이야기, 문을 잠그고 왔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아 불안해져 다시 돌아가 문을 확인하고야 외출했다는 이야기. 단지 기억력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불안감이 너무나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꼭 발길을 돌려 다시 갔다 와야 안심하고 일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혹시 내가 강박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불안으로부터 오는 강박

강박증상은 흔히 더러운 것에 오염되는 것에 대한 공포와 걱정, 그리고 이를 제거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강박행동과 문을 잠궜는지, 가스는 끄고 나왔는지 등이 의심이 되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확인 강박행동, 옷을 입었다가 벗기를 반복하고 물건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기도 하는 반복행동,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심한 불안을 느끼며 하는 정렬행동, 대개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무조건 모으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모아 두는 행동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행동이 아니라 특정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강박증에 속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폭력적인 생각, 성적인 생각 등이 흔하다.

요즈음은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증도 있다고 한다. 특히 직장인 중 더 나은 삶을 위해, 직장에서 보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혹은 재미를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92.2%인데, 이 중 자기계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은 68%나 된다고 한다.

봉급생활자(Salaryman)와 학생(Student)이 합쳐진 샐러던트(Saledent) 즉 '공부하는 직장인'을 의미하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우주 속의 인간

이정규의 「우주산책」은 '천문학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물음을 수없이 하고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망원경, 우주, 빅뱅, 지구탄생, 별자리, 은하, 원자, 초신성, 달, 박테리아 등 학창시절 지구과학시간에 들었는지 익숙하나 낯선 단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나열의 끝에는 '인간'이 있다. 

책을 읽어가다 '지구돋이' 사진에서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지구돋이라는 말은 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 덕분에 탄생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이 희미하고 작디작은 지구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쓴 책 「창백한 푸른점」(Pale Ble Dot)에서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독트린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물론 누군가는 의미 없음에 절망할 수도 있겠지만, 난 티끌 위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조금은 여유로운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인간이 우주에 티끌보다 작은 정도라고 하니,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서둘러 봐야 얼마나 빠를 것이며, 불안해봐야 무얼 그리 걱정하고 불안할까 싶어졌다. 티끌보다 더 작은 존재인데. 

우주의 큰 뜻으로 만들어진 나

생명의 진화를 살펴보면 지구가 생성되고 약 10억년이 지난 뒤, 지금으로부터 35억년 전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생명이 나타나는데 박테리아다. 산소라는 부산물을 배출하는 광합성 작용을 하는 생명체 시아노박테리아가 등장한다. 그리고 2억5000만년 전쯤 포유류가 등장한다. 그것도 작은 설치류로. 인간의 뇌에는 우리가 무시하는 하등동물인 파충류의 뇌가 있다.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관장하는 포유류의 뇌도 있다. 

우리의 몸도 진화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여러 특징이 있다. 작가는 우주에서 우리가 생겨나온 여러 특징을 이야기 한다. 첫째는 팽창하는 우주는 더 큰 나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했다고 한다. 둘째는 다양성과 복합성이다.

별 폭발시 몸 안에서 만든 다양한 원소들을 흩뿌려 다음세대가 더 풍요롭게 생겨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드는 초신성의 '헌신'과 매초 400만t의 수소를 태워 빛을 내고 있는 태양의 '자기희생'이 우주의 구조 속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때 내가 더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우리가 우주에서 생겨 나온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주는 '상호 의존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모든 존재는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불안하고 강박증을 느낄 이유가 없지 않을까. 나는 현재의 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하지만 우주의 큰 뜻으로 내가 생겨난 것을 기억하고 조금만 자신을 믿고 힘을 조금 더 내어보자.

밤하늘을 보며 내 몸이 우주라 생각하며 나를 존중하며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위한 지구임을 생각하는 인식의 확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과 별의 태어남과 죽음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자.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지금 나의 모습에 결코 불안해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라고 꼭 안아주자.

 

■ 작가 소개

이정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박사)했다. 드넓은 국립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모프라 전파망원경에서홀로 우주를 바라보던 적막함을, 헤일-밥 혜성과 대마젤란은하를 처음 마주한 날을 잊지 못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스페인과 하와이에서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귀국 후 지금은 '물리적 우주'와 '마음의 우주'를 연결시키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천문학과 생태문제, 심층심리학이라는 큰 주제들을 어떻게 묶어낼 것인가 계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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