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민 ㈔제주미래발전 포럼 이사장·논설위원

우리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따라 오는 9월28일 시행된다.

이 법은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제안됐으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표류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강한 여론의 요구에 따라 불완전하지만 원안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빠진 채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통과 이후에도 법이 내수 경기를 위축시키고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반대 의견과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패 척결이라는 법 취지를 지켜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동안의 논란을 종식시키고, 김영란법의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정성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김영란법 제안 이후의 논란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법의 적용 대상인 공무원·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의 거센 반발은 물론이고, 화훼농가 및 한우 농가 등 농어민이 내수경기 위축의 직격탄을 맞는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팽배했다.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논란은 확대 재생산됐고 여론은 양분됐다.

그러나 농어촌의 어려움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시작되는 개방농업 정책 이후 가중돼왔고, 농어촌의 몰락은 5만원이 넘는 명절 선물 세트를 판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고령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헌재의 결정문에서도 언급했듯 우리사회 언론과 교육계에서 부패와 비리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우리사회의 경제적 약자가 아닌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주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서 공무원의 지위는 헌법적 가치를 초월하고 있다. 국가 교육정책의 막중한 책임을 진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인식이나, 정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며 범죄를 척결해야 하는 검찰의 고위간부가 뇌물수수 등으로 구속되는 작금의 현실은 영화 배트맨의 가상의 부패도시 '고담시'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로마는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요구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시대에 몇몇 왕과 귀족들이 투철한 도덕의식과 공공정신을 보인 것에서 유래됐으며, 이는 국민을 한데 모으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옴으로써 로마의 전성기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공화정 시대 로마의 집정관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였고,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도로를 개설하는 등 사회기반시설을 정비했다.

거대 로마제국의 몰락은 이민족의 침략이 아니라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한 평민계급의 몰락, 사회지도층의 사치와 향락 및 부패 등 내부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진 사회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영란법의 시행이 공직사회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는 기제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정의와 봉사와 희생정신이 되살아나는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최근 단행된 제주도 공무원 인사에서 승진하거나 보직을 맡은 공직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공직을 수행할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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