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산호나팔과 북으로 시작
전국 최고의 열기 자랑
문화 품격도 업그레이드

관악제와 콩쿨 성장 따라
세계 '관악의 메카' 성장
"현장 있는 것만으로 행복"

바람의 섬 제주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관악은 최고의 궁합이다. 또 야외연주가 쉽고 대중과 친화력이 높은 관악을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평화의 섬 제주에서 여름 낭만을 찾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매년 여름이면 힘찬 관악소리를 전하는 '제주국제관악제'가 스물 한 살을 맞았다. 오는 8일부터 16일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섬 곳곳을 관악의 향연으로 물들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음악축제가 바로 우리들의 곁에서 열린다는 것. 백발의 거장들이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서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저 발걸음을 옮겨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제주에서 세계적인 관악제가 태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토박이 관악인들의 노력과 오래도록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관악의 섬'이란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주관악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학생들의 훈련용 신호나팔과 북이었지만 본격화된 것은 6·25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다. 이 때 제주중학교, 제주농업중학교, 오현고등학교 등 학교 악대와 한국보육원악대, 육군제1훈련소군악대, 구세군악대 등이 생겨났다. 과정을 보면 해방 후 한국전쟁 직전 제주에 내려와 현대극장에서 공연하던 서커스 유랑악단이 일을 접자 제주중학교가 악기를 사들여 악단을 만들었고, 전쟁이 터진 후에는 UN 산하 저개발국지원기구 C.A.C 제주책임자였던 미국인 길버트 소령이 한국보육원에 악대를 만들어 집중지도하면서 악대가 없던 오현고 등의 관악대 창설을 적극 도왔다. 

이들 관악대의 연주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 속에 별다른 문화예술도 없던 제주사람들의 애환을 달래고 한줄기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존재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1995년 시작된 제주국제관악제는 도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날이 갈수록 성장을 거듭했다. 관악제 초창기에도 16개로 적지 않던 관악대 수는 이제 40개를 헤아릴 정도가 됐다. 

수많은 초·중·고등학교 교악대를 시작으로 해군·해병대 군악대와 경찰악대, 한라윈드앙상블로 대표되는 오랜 전통의 시민밴드, 시립교향악단 수준으로 대우받는 국내 유일의 전문 관악단인 제주도립 서귀포관악단까지 제주에서 실력을 다지고 다양한 무대를 통해 여전히 사람들에게 마음의 휴식을 선물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관악단이 400여개, 이중 한국관악협회의 콩쿨 참가 등 실제로 활발히 활동하는 팀도 고작 120개로 침체된 와중에 제주만은 예외인 셈. 알고보면 제주 관악열기가 이만큼 뜨겁다.

'23개국' '2600명'. 제주국제관악제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올해 참가국과 참가자 숫자다. 

세계관악·앙상블지도자회의(WASBE)나 아시아태평양관악협회(APBDA) 등 개최지를 옮겨가며 여는 관악제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제주만큼의 규모(참가자수·일정 등)를 갖춘 국제관악제가 없다. 

홀수해 격년제로 열리던 관악제는 1998년 전문앙상블 축제, 2000년에는 금관악기 국제콩쿨이 추가됐다. 홀수해는 밴드축제를 통해 대중성을, 짝수해에는 전문성을 추구하자는 뜻이었다.

2012년부터는 밴드축제와 앙상블축제, 콩쿨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운영하면서 관악인들에게 '꿈의 축제'로 거듭났다.

특히 관악제와 함께 열리는 콩쿨은 서울국제음악콩쿠르·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1~2위 입상자에게 병역혜택이 주어지는 우리나라 3대 국제음악콩쿠르로 자리잡았다. 관악 분야로 한정하면 독일 뒤셀도르프와 함께 세계 2대 관악콩쿨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제주에서 열리는 관악제에 이처럼 세계 관악인들의 발길이 몰리는 것은 분명 '매력'을 느껴서일 터. 관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주국제관악제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축제' 성격의 국제관악제와 '전문성'을 강조한 콩쿨의 결합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냈다.

거장들이 콩쿨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에스트로 콘서트' 등을 통해 깊이 있는 음악세계를 들려주고, 관악제·콩쿨 참가자들은 꿈에 그리던 거장을 만나고 기량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참가자들은 "낮에 콩쿨 심사를 맡았던 거장과 같은 날 밤에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황홀함은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다"며 풍요로운 관악의 현장에 함께 한다는 데 높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콩쿨에서는 경쟁자였지만 열흘간 관악제 캠프에서 함께 생활하며 연주자들끼리 끈끈한 우정을 쌓는 것도 제주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제주는 이렇게 세계 관악인들의 메카로, 교류의 장으로 떠올랐다.

대도시에 비해 순수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도민들에게도 제주국제관악제의 품격 높은 연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시설이 잘 갖춰진 공연장 뿐만 아니라 소공원, 갤러리, 해변, 미술관 등 사람만 있다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동네'까지 찾아오는 친절한 축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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