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요즘 우리 주변에는 미혼인 총각·처녀들이 많다. 필자는 한때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젊은이 쉼터'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메일의 닉네임도 '쉼터'라고 정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쉼터는 그냥 내 마음속에만 남겨 뒀다.
사실을 말하면 필자는 결혼이나 부부사랑 같은 걸 말하는 게 부끄러운 사람이다. 아내를 위해서 뭐 하나 제대로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무자격 남편이기에 지난날이 더욱 아쉽고 후회스럽다. 이 글은 내 아들, 딸들이라도 부디 금실 좋은 부부가 돼 준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적어본 것이다.
IMF파동으로 폐업, 의기소침한 남편에게 취직시험 공부를 하라고 격려한 영미는 조그만 사무실에 다니게 된다. 자신의 생일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 옆 전봇대·골목길·집 현관문에까지 '영미야, 사랑해'가 붙어 있는 걸 본다.
집안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주방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자기 생일인데 선물 하나 사줄 돈도, 할 줄 아는 음식도 없고. 해서 오늘 저녁은 라면이라도 끓여주고 싶어 도서관에서 일찍 왔다"는 것. "그럼, 밖에 붙여 놓은 것도 자기가 한 거야?"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영미는 남편을 와락 끌어안고 울어버린다.(홍영미(원주시), 2008.1.20. '이창우의 행복닷컴')
사랑은 하늘의 별을 따다 주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는 것, 그게 사랑이다.
여러 여성들과 바람을 피우던 서른다섯살 총각이 늦게 장가를 들었다. 그것도 나이가 열두 살이나 많은 마흔일곱살 과부한테. 남들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지만 이들은 살가운 사랑을 나누면서 잘 살았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1804~1881)와 메리 앤 루이스(애칭 마리안느, 1792~1872)가 그들이다.
마리안느는 미모나 지적인 교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을 대하는 정겨운 태도와 남편에 대한 존경심. 밖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들어오는 남편을 밝은 미소로 반겨주면서 힘을 북돋워주고 존경심을 표하는 데 한결 같았다.
그런 아내를 고맙게 여기고 사랑으로 감싸며 살아간 33년. 부부 간에 마음 상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 부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부끄러워진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남편, 아내 고생만 시키며 살아온 남편이기에.
같은 시대에 디즈레일리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사람이 있었다.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웅변으로 대중을 매료시키며 수상을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
두 정치인의 만찬에 따로 초대받은 여성이 있었기에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가까이에서 본 두 사람의 인상은 어떻던가요?" "두 사람 다 뛰어난 분이었어요. 글래드스턴을 만났을 때에는 그가 영국에서 가장 박식하고 훌륭한 사람임을 알았어요. 그런데 디즈레일리를 만난 뒤에는 내가 영국에서 가장 매력 있고 멋진 여인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지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긍지와 행복감을 갖게 만든 사람, 그가 바로 디즈레일리였다.
행복과 관련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아들, 딸들에게 내가 보여준 것은 과연 괜찮은 본보기였을까. 돌아볼수록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특히 늘 고생만 하며 살아온 아내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대화와 공감, 격려와 감사로 행복감을 안겨주는 남편이 되려고 분발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