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시인·제주문인협회 회장

제주어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원이 많다. 뜻은 알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도통 납득이나, 짐작이 안가서 답답하기도 하고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70세가 되도록 제주어를 쓰다 보니 오히려 희한한 거다. 자칭 제주어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즐기고 있으니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누구나가 좋아하는 '사랑하다'라는 말은 '개정증보 제주어 사전'에서 '사랑(愛)'이라고 표기돼 있다. 필자는 지금도 '사랑하다' 라는 말은 안 쓰고 사랑한다고 쓴다. 사랑한다는 대신 '너 우렁 살암서'는 써 본 것 같다. 여기서 우렁은 원형이 '우르다'로 '위하여'을 의미한다. '느 우렁 나 우렁 몬 우렁'이라는 말은 '제주어 보전회'의 건배사로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모두를 위하여'이다.

사전을 더듬어 보았더니 비슷한 단어로 '소랑하다'가 있다. 뜻은 '가늘고 길다'라는 형용사임에도 '길쭉하다'라는 동사라는 거다. 고어로는 어떻게 변화됐는지 국어사전도 찾아 보았다. '사랑하다'는 동사는 '자기가 좋아는 사람이나 물건에 마음이 쏠리게 해 이를 갖고 싶게 만드는 감정, 또 그 감정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행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랑보다 더 고어로는 '괴다'가 있다. 뜻이 여러 가지인데 '우묵한 곳에 액체가 모이다'가 있고, '초, 간장, 식초 등이 발효할 때에 거품이 부걱부걱 솟다'도 있고, '밑을 받치어 안전하게 하다'도 있다. 그리고 '사랑하다'라고 표기돼 있다. 
'괴다'를 제주어로는 '궤다'로 표기하는데 뜻은 '괴다'와 같다. 다만 '궤삼봉'이라는 단어가 있어 눈길이 오래 머문다. '특별히 귀엽게 사랑하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경 손지 할타간다 할타온다 궤삼봉허여도 덕을 못 보메'라는 말은 '그토록 손자를 아끼느라고 감기기운으로 코가 나면 손으로 닦아주기도 아까워서 아예 흘리는 콧물을 혀로 핥아먹을 만큼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도 손자가 장성하면 이미 늙어서 테역벙댕이(잔디 한 삽, 즉 무덤에 들어 가 있음)가 되니까 어느 정도 손자를 아껴주라'는 정다운 힐난이다. 

'궤다'나 '궤삼봉'에 의해 생겨난 말로 '궤우'가 있다. 궤우는 애인을 말한다. 즉, 이성 친구라는 거다. 그러니까 제주도에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개방적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제주도에는 첩이 없다. 다만 은각시가 있다. 씨왓이라고도 한다. 한자 첩(妾)을 눈여겨보면 언젠가는 떠날 여자니까 서 있다고 형상화시켰지만 은각시는 명분이 당당할 만큼 가사 분담이나 역할로 한몫을 했다. 

큰각시가 정월맹질을 찰리면 은각시는 추석맹질을 찰렸던 거다. 그러므로 둘 사이의 호칭도 따로 있다. '성님, 아시'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식부부가 아닌 남녀관계는 복잡다단하다.

어떤 아내는 궤우나 은각시하지 말고 자기만 아껴주기 바라며 반농반어인 밭에서 평생 검질을 매고, 바다에서 머리가 깨지도록 물질을 해서 여러 자식을 땀과 눈물로 키우지만,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작 아내는 남들 다 알고 나서야 증거를 포착한다.

이미 낌새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던 거다. 친구들의 추구리(부추기)는 쏨(탓)에 씨왓 집으로 달려가서 씨왓의 허운대기(머리채)를 뜯고 그 집 울내를 나오면서 앨록허다고 춤(침)을 퉤하고 뱉고 나온다. 여기서 앨록허다는 말은 '째째하고 더럽다'라고 제주어 사전에는 표기돼 있다. 

제주도에서는'무'를 '남삐'라고 한다. '남삐'는 '노' 즉, '나물'이라는 말에 뼈가 합성된 단어다. 제주도에서는 뼈가 단단하다는 의미로 뼈를 '꽝'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나물 뿌리에 꽝꽝헌 꽝이 붙어 있다고 '남꽝'이라고 쓰면 욕 중에 가장 심한 욕으로 '느네 어멍 꽝이여'가 된다. 그래서 '남의 뼈'라고 해석될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단단한 뼈가 있는 나물'이라는 의미로 '남삐'라고 했다. 그래서 무는 나물 뿌리가 단단한 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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