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논설위원

오늘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이다. 백중은 본래 과실과 채소 등이 많이 생산돼 백가지 곡식 씨앗이 갖춰진다는 '백종(百種)'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백중날 육지부(한반도) 농촌에서는 봄부터 시작된 농사일에 지친 머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새 옷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육지부의 백중날은 농업과 관련된 날이며 '머슴들도 쉬는 날'이었다.

좌동열(2010)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우리 지역에서 백중날은 음력 7월14일이기도 한다. 이날 제주도민들은 '물 맞기'를 하거나 '백중제'를 지냈다.

'물 맞기'는 부녀자들이 더운 여름철 농사일을 끝내고 시원한 폭포수를 맞으며 휴식을 취하던 풍습이었다. 반면 백중제는 테우리들이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던 목축의례였다.  

테우리들은 백중날 밤 자시(11시30분~12시30분) 께에 방목지나 테우리 동산 또는 방목우마를 관찰하는 '망동산'에서 백중제를 지냈다. 이것을 '테우리 고사', '테우리 멩질'이라고도 했다. 백중날은 육지부와 달리 목축을 하던 테우리들의 날이었다. 

테우리들은 다소 지역차가 있으나 백중제를 위해 메(밥), 제숙, 수탉(계란), 채소, 과일, 상애떡, 술, 음료수 등을 준비했다.

메 위에는 숟가락 대신에 새(띠)를 꺾어 세 개씩 꽂는 것이 특징이다. 밥을 먹을 주체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와 꼬리가 있는 구운 생선, 털과 내장을 제거한 수탉, 콩나물, 양애무침, 미나리무침, 수박, 포도, 배 등도 진설됐다.

성읍리 마을의 백중제는 목축에 이용하던 말고삐, 짚신, 테우리 수건, 테우리 지팡이, 도롱이(우장)도 제물들과 함께 진설한 장소에 놓는다.

백중제에서는 축문을 읽지 않고 구두로 우마의 번성을 비념한다. 테우리들은 우마의 번식을 위해 "천황 테우리도 도와줍써, 지황 테우리도 도와줍써, 인황 테우리도 도와줍써"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방목 장소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제를 지냈다. 

장전 마을공동목장조합에서처럼 백중제를 유교식으로 진행하며 백중제 마지막 순서로 축문을 읽는 사례가 있으나 전통적 백중제는 무속식으로 이뤄지던 개별의례이므로 축문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성산읍 수산리 백중제에서는 목축을 하다 죽은 테우리들의 영혼을 불러 모아 대접하면서 '과거에 우마를 방목할 당시 높은 동산이나 능선 같은 곳에 고정 배치됐으며 그들이 죽은 후에도 혼만은 언제나 그 장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믿음'으로서 우마를 잘 돌보아 달라는 뜻을 전했다. 

이것은 수산마을 테우리들의 오랜 목축전통을 면면히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마을은 고려 말부터 몽골에 의해 탐라목장이 설치된 지역으로 제주도의 대표적 목축마을로 백중제의 규모도 크다.

이상과 같은 백중제는 무속식 의례로, 갱(국)을 올리지 않고, 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목장조합에서 아침이나 낮 시간에 지내는 백중제에서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절을 하고 축문을 읽기도 한다. 목장조합이 행하는 유교식 백중제는 개별단위 목축이 소멸되는 현실에서 백중제를 계승하려는 노력이다.

백중제는 현재도 일부 행해지고 있는 목축의례이다. 하지만 목축인구가 급감하면서 백중제가 대부분 중단되거나 그 원형들이 간소화되면서 변형되는 중이다.

더 늦기 전에 사라지고 있는 백중제의 원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전승해야 할 귀중한 목축문화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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