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상황이 절박해도 지도자의 언어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원희룡 지사가 도·행정시 간부 공무원 정책워크숍에서 "도정이 물어뜯기고, 폄훼당하고 있다"고 섬뜩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간부 공무원들에게는 도정 전반에 몸과 영혼을 던져 일해야 한다고 엄중한 충고도 했다. 

푸근하고 인자한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도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아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만이 목도될 뿐이였다. 평소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며 흉을 보던 그가 대통령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에 웬지 허탈함이 몰려왔다.

집권 2년이 넘도록 가시적 성과를 못 내는 지사의 절박하고 답답한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정이 물어뜯기고...'라는 표현은 지도자 언어의 품격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정치 지도자들의 날 선 말은 부메랑이 되어 지지율의 하락과 정치적 운신의 폭을 좁히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원 지사의 독설 통치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도 오버랩된다. 예전 박 대통령은 관료사회의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에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미제(美帝)는 우리의 원쑤'라는 북한의 섬뜩한 구호를 떠올리게 했다. '쳐부술 원수'는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격조있는 표현은 아니다. 

우리는 논리와 설득이 막혔을 때 욕이나 거친 감정적 표현을 하곤한다. 강한 자극적 표현은 흥미를 끌어 일시적인 효과를 노릴 수는 있으나 결국 막다른 골목에 직면케 한다. 극단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낙제 수준인 정치인들이 독설 통치에 기대다가 그 끝이 어떠했는지는 익히 보아온 바다. 

지도자의 품격을 의심케 하는 정제되지 않은 독설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은 지도자의 말에 따라 위안을 받아 기운을 차리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무릎을 치게 할 정도의 통찰력이나 정제된 언어의 선택을 보여주고 유머와 여유로움이 넘치는 표현을 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원 지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절박해도 지사의 말은 거칠고 다급해서는 안 된다. 품위와 여유를 남겨둬야 한다. 때로는 표현의 남용보다 절제에서 메시지가 더  전달이 잘된다.  

# 독선·오만·불통정치, 측근비리 의혹, 관료 복지부동이 도정 발목 잡아

집권 2년 만에 원 지사는 도정운영의 추동력을 잃고 있다. 어쩌면 스텝이 완전히 꼬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원 지사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절박한 상황은 제2공항 건설, 농가 구조개선, 사회 통합 등 진정한 도민 합의가 없으면 풀기 어려운 수많은 난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쌓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관료 집단은 서서히 반발 체제로 돌아서고 있다. 지사의 레임덕이 보이자 복지부동 모드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될 일은 늦추고, 어려운 일은 아예 손 안대는 관료사회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 레임덕에 따른 행정공백과 공공서비스의 파행은 도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간다.

이런 복잡다기한 상황에 지사 자신만 옳은 듯이 오불관언하겠다는 태도는 도민 위에 군림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사 측근을 둘러싼 풍문에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것인가. 도정 출범 당시의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지사 개인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고 측근 관리가 실패하면서 온갖 루머들이 창궐하고 있다. 이렇게 누적되는 도민의 불만과 의구심들은 도정 추진동력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게 된다. 

지난 2년간 제주 도민은 원 지사의 독선·오만·불통의 도정운영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내며 개선과 변화를 기대해 왔지만 원 지사는 지금껏 들은 척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귀를 열어 들으려하기 보다는 말을 많이 하려 했다. 그만큼 오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공감능력 부족으로 소통에 장애를 겪으면서 도정 운영에 발목을 잡혔다. 소통의 본질이 정보와 논의의 개방성, 특히 비판적이고 불편한 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데 있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대로 가는 것은 지사를 위해서도, 지사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온 도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입은 닫고, 귀는 열어 도민의 소리를 경청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각계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생각과 색깔이 다른 사람들도 만나 얘기를 듣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도자는 직언을 경청하고 소통을 중시해야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다. 당 태종이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명군으로서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위징'처럼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언하는 충직한 신하를 가졌으며, 천자의 권위를 내려놓고 그 까칠하고 속 뒤집는 직언을 경청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선 독설 통치와 소통의 역설에서 벗어나야 

독설 통치는 레임덕의 발로이다. 임기가 다가오면 레임덕은 필연의 수순이다. 지사가 독설 통치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가히 도민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럴 수록 '레임덕' 시침이 빨라질 수 있다. 자신의 말이 씨가 되어 자신을 심판하는 부메랑이 되지 않기를 유념해야 하는 이유다. 

레임덕 위기를 맞은 원 지사의 급선무는 도정운영을 정말 도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는지 자신부터 성찰해 보는 일이다. 도민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리더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도민의 눈높이에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지사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자기 성찰과 혁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다수 도민들의 눈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  하고 고뇌하는 지사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사의 언어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지금처럼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견해를 듣기보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소수의 견해와 제언에 의존하는 경우 도민과의 공감대는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도정 운영에 차질을 초래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감의 정치를 위한 보다 개방적인 도정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제주 도민은 원 지사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담대하고 창의적인 이니셔티브로 국면을 타개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뭐가 잘못됐는지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잘못은 분명 다른 데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사람은 권력의 사다리를 오를 때는 주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쥐고 나면 소통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며 소통을 외면한다. 소통이 불만표출 경로로 이용돼 자신의 정책 추진을 방해하고 권위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통의 역설'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소통의 역설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의 자리를 스스로 위태롭게 한다.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비판의 소리를 기피하고, 듣기 좋은 소리에만 치우칠 경우 전체를 보는 눈을 잃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원 지사는 독설 통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한 소통을 통해 원칙과 신뢰라는 소중한 자산의 부가가치를 늘려가야 한다. 제주 자산의 부가가치 증식을 위한 지사의 책무이행은 함께 일할 인물의 선정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비전의 제시를 통해 도민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측근의 정리가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방장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행정부는 비판적 기사를 '선물'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내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국방부 고위간부가 '조직 내에 어떠 어떠한 문제가 있다'라고 보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비판적 기사가 나오면 방어적으로 움츠리지 말아라. 당신은 지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문제를 고칠 수 있는 기회'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원 도정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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