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환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장

매년 9월7일은 '사회복지의 날'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국민의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사회복지사업법상에 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이날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공포된 1999년 9월7일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다.

도제 70년, 특별자치도 10년인 올해 열일곱 번째 '사회복지'의 날을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공동체 역사 속 '사회복지'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해 되돌아보며 '사회복지의 날'을 기념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제주의 사회복지는 수눌음 정신으로 대표된다. 아픈 사람, 부모가 없는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가장 먼저 돕고 형편이 어려운 이에게는 모두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며, 수고는 함께 덜고 어려움은 같이 헤아리던 공존의 미덕이 수눌음 정신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생존'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선택은 '공존'이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다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러 스마트 시대, 인공지능 시대를 얘기하는 지금 우리는 도리어 더욱 애타게 '생존'을 갈망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는 듯 하다. 소유에 집착하게 되고 경계 짓기에 애달아 있는 모습은 수백년 전 우리 선조가 맞섰던 척박한 자연환경보다 더 암담하기만 하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는 부동산 값, 서울 못지않다는 교통체증과 주차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쓰레기 문제, 제주다운 정체성의 훼손, 자연환경의 파괴 등 우리가 그동안 다른 세상에서 살다 왔나 싶을 정도로 악화된 제주사회 삶의 환경은 그 어느 때 보다 '공존'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공존'의 지혜는 다름아닌 제주 공동체의 근간을 이뤄 온 선조들의 삶의 철학이었던 수눌음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수눌음 정신의 불씨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의 복지문제는 우리 지역의 자원으로 해결한다는 읍·면·동지역 사회보장협의체의 활발한 움직임이나, 전국적인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는 아너소사이어티 가입률과 착한가게 참가율 등의 공동모금활동은 수눌음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또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에 끊이지 않는 식품·생필품 등의 기부와 타 지역 인구와 대비해 높은 수준인 자원봉사활동인구 규모는 물론 사회복지시설 평가와 정책평가 등에서 매년 수위를 지키고 있는 사회복지현장 근무자들과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열정은 우리 시대에 맞는 수눌음 정신의 실천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움 수준을 뛰어넘어 일반 도민이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민사회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무한한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수눌음 정신의 불씨와 가능성을 더욱더 살려내는 길이 곧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는 길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가 될 것이다.

감히 단언컨대 적어도 제주에서 만큼은 사회복지가 곧 수눌음이다. 수눌음 정신이 지금의 제주 사회복지를 이루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제주에서 맞는 '사회복지의 날'만큼은 제주인의 자랑스러운 공동체 정신인 '수눌음의 날'로 명명해 제주도민 사회가 일상생활 현장 곳곳에서 수눌음 정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일상생활 현장 곳곳에서 실천하고 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는 오늘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이 개최된다. 

시대가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욱 발하는 수눌음 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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