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 교장·논설위원

나는 참 바보다. 마음이 물러서 거절을 잘 못했다. 회식자리에서 누가 술을 권하면 거절하는 게 실례가 될까 봐 사양하지 못하고, 한 잔 두 잔 받아 마시다가 남보다 먼저 취하곤 했던 쓰린 기억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No'라고 해야 할 때 그러질 못했던 심약(心弱)함이 나를 그르친 것이다.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모레 (28일)부터 시행된다. 목적은 참 좋다. 

하지만 소포장으로 팔 수 있었던 농·수·축산품 판매가 급감하는 대신 값싼 외국산이 대량 수입되면서 우리네 1차산업을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에게 '공익 목적'이라면 청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이 법이야말로 불평등법이다.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청탁 등에 과감하게 'No'라고 해주길 바란다.

부디 이 법이 정착되어 부패한 우리 사회가 청렴사회로 탈바꿈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제주도민으로서 더 민감한 문제는 유입인구의 적정선 문제다. 벌써 65만을 넘어선 제주인구다.

하루 평균 14만명씩 들어오는 관광객을 합치면 상주인구는 벌써 80만이다. 

앞으로 90만, 100만 시대가 된다면 과연 이 좁은 땅에서 우리는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 것인가. 무비자입국 통제 등 과감한 규제가 필요하게 된 이유다. 

50년 전, 제주도지사 정우식씨(1966~1967)가 "제주도가 번영하려면 인구가 100만은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개인에게 팔려버린 서귀여중 운동장에서 있은 도정홍보 연설에서였다. 

그 뒤로 '제주인구의 적정선'은 내게 늘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교통체증과 주차난, 넘치는 쓰레기, 지하수 고갈과 하수처리문제, 중산간 지대와 곶자왈까지 잠식하는 난개발, 무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에 의한 범죄 등 하나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만 잔뜩 안겨줄 것이다. 제주 섬은 땅도 늘어나지 않지만, 폭발하는 인구를 감당할 기업이나 공공기관도 한정돼 있다. 

언젠가 교육부에서 내려온 고위인사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됐는데, 그는 "제주의 대학출신들은 왜 자꾸 육지로만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해서, "제주에는 그들을 받아줄 만한 기업이 없기에 일자리를 찾아서 나가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어느 적정선에서 과감하게 'No'라고 말해야 하고, 그걸 뒷받침하는 규제가 구체화돼야 한다. '이제 그만'이라는 말은 배타적인 게 아니다. 

더 이상 포화돼서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광복 직전인 1944년 21만9000이던 제주인구가 1946년에는 27만6000으로 갑자기 불어났다.

청년들의 실직과 식량난 등이 한데 얽혀 불만이 심화되면서 결국은 끔찍한 4·3으로 폭발된 것이다.

물론 '5·10 선거 반대' 등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뇌관(雷管)이긴 했지만.

한때 살길을 찾아 육지로 나가는 길을 막고 200년 동안(1629년, 인조 7~1825년, 순조 25)이나 인구 3만4000쯤이던 제주를 '바닷속 감옥'으로 만든 출륙금지령을 시행한 시기가 있었다. 

한양 중심적인 사고에 젖은 양반들과 임금이 합작한 폭거(暴擧)였던 셈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입도제한규제'라도 만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구태여 'No'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제주인구가 늘 적정선에 맞춰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정선을 넘어서면 저절로 새어나간다는 계영배(戒盈杯)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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