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더치 페이(Dutch pay·각자 내기)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더치 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다. 1602년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식민지 경영과 무역 등을 위해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의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3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계기로 두 나라는 서로 갈등이 이어졌다. 이에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을 탓하기 시작하면서 '더치'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이후 영국인들은 대접하다라는 의미의 '트리트' 대신 지불하다라는 뜻의 '페이'로 바꾸어 사용했고, 더치 페이라는 말은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애인 빼고 모든 변호사와 더치 페이 하라" 대법원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판사들에게 내린 내부 지침을 요약하면 이렇다. 청탁금지법이 28일 본격 시행됐다. 지난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처음 법안을 발표한 지 4년1개월만이다. '3·5·10만원' 조항으로 요약되는 청탁금지법은 단순히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아니다. 권익위가 밝힌 대로 대한민국의 부패유발적 사회문화를 개선하겠다는 게 청탁금지법의 근본 취지다. 혈연·학연·지연 등 연줄을 매개로 한 부정청탁, 관계 형성이란 명분 아래 이뤄지는 과잉 접대 등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잘못된 관행 자체를 바꾸자는 프로젝트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법 시행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공직자들은 28일 이후 식사 약속을 잡지 않는가 하면 고급 음식점에는 일명 '김영란 정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선 피감기관이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과 보좌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 것이라는 데는 모두들 공감하는 분위기다. 아직도 판단 기준에서 모호한 부분이 많아 당분간은 혼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밥값 계산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갑을관계를 판가름하던 문화가 사라지고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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