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사회부 부국장

제18호 태풍 '차바'는 당초 큰 피해 없이 제주를 비껴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급격히 방향을 틀며 제주를 관통했다. '차바'는 4일 밤부터 5일 새벽 사이에 제주를 할퀴고 가면서  큰 생채기를 남겼다. 쏟아진 폭우에 한천과 월대천 등이 범람하고 강한 바람에 각종 시설물이 파손됐다. 급기야 제주도는 정부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요청했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에 입력한 피해액은 252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도로·하천 등 공공시설은 141억원, 비닐하우스·수산양식시설 등 사유시설은 11억원이다. 제대로 피해가 잡히지 않는 사유시실과 농경지 유실, 농작물 쓰러짐 피해까지 감안하면 제주에는 그야말로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것이다.

이번에 제주지역 피해가 커진 데는 도민들의 준비부족도 한몫했다. 이는 기상청이 제대로 태풍의 강도나 진로를 예측하지 못해 사전에 충분히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한 측면이 있다. 기상청은 태풍이 제주에 상륙하기 이틀 전인 지난 3일 오후 4시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해협 부근을 거쳐 일본 열도를 따라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키나와 부근 해상을 지난 뒤부터는 상대적으로 약한 수온과 강한 강풍대의 영향으로 태풍의 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도민들이 한 시름 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4일 오후 2시 "제주도와 남부지방은 태풍의 중심권역에 위치해 강풍과 호우에 의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뒤늦은 경고를 내놨다. 사실상 기상청의 '헛발질'이나 다름없다. 

이번 태풍으로 제주 산간에 많은 비를 뿌리기는 했으나 한천이 범람했다. 지난 2007년 9월 태풍 '나리' 내습 때 범람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9년만에 또다시 피해를 입었다. 산지천 하류 남수각은 한때 범람 위기를 맞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으나 다행이 범람은 없었다.

태풍 '나리'이후 제주시 도심권을 관통하는 한천·병문천·산지천·독사천 등 4개 지방하천에 저류지를 조성했다. 모두 12곳으로 164만7000t을 저류할 수 있다. 저류지 조성 덕택에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는 하나 역부족이었다. 저류지 석축 일부가 무너지고 한천 저수지에는 설계 잘못 등으로 물이 차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천 제2저류지의 용량은 적정량보다 17만㎡나 부족하는 등 용량 부족도 문제다.

2007년 태풍 '나리'로 제주시 도심 4대 하천이 범람하며 막대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자 저류지 조성과 함께 복개구조물 철거방안이 본격 논의됐다. 그러나 복개구조물이 도로와 주차장 등으로 활용되다보니 교통체증과 주차난 등의 이유로 철거는 언감생심인 상황이 되고 있다. 이제는 당장의 편의보다는 복개구조물을 철거하고 하천을 친환경적인 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물 난리가 날 때마다 정부와 도, 시 등은 땜질 처방을 하며 전전긍긍했다. 항구적인 풍수해저감종합계획을 만들겠다고 소리는 요란하나 피해는 반복되고 있다. 예산 타령만을 하며 바뀌는 환경에 따른 대응은 너무 더디다. 한반도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가히 '물 폭탄'이라고 불릴 정도의 폭우가 잦아지고 있다. 2014년 8월 태풍 '나크리' 상륙 당시 제주에는 하루 동안 최대 1400㎜의 비가 내렷다. 2013년 5월에는 태풍과 장마가 아닌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972㎜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무분별한 도시개발은 물 흐름을 바꾸고 콘크리트와 아스콘 포장 지역이 늘어나며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공간을 잠식했다. 제주시 도심에 영향을 주는 4대 하천의 용량부족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도로나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의 양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관리대책이 절실해졌다. 치산치수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경영의 근간이자 정치의 요채로 비유되고 있다. 큰 비만 내리면 가슴을 졸이는 도민이 많아져서는 민생의 안전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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