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논설위원

올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지 570돌이 되는 해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문화재로 만나는 한국'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2016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연수'가 지난 9월 서울과 강원도에서 총 54개국 146명의 전 세계 세종학당 우수 학습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세계 각지에 자리 잡은 세종학당에서 평소 한글과 한국어 말하기를 비롯해 한국문화를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는 연수자들이기에 한국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사물놀이, 탈춤, 태권도, 케이팝 노래와 안무 등 각 분야에서 시행하는 연수에 열심히 참가했다. 

한국문화 연수 참가자들은 8일간 연수한 것을 완벽한 공연으로 펼쳐 큰 박수를 받았고 대회장에는 정관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과 더불어민주당 제주도 오영훈 의원 등이 참석해 결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한글날이면 특히 길거리 간판이나 일상용어 등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많지만 세계 어학자들이 찬사를 보내는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겨 보며 '우리말사전'을 펼쳤다.

사전을 펼칠 때마다 의아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 첫 장부터 열고 보면 우리말은 찾아보기 어렵고 한자어로 된 낱말들이 가득 차 있다. 특히 'ㅋ'의 장을 열면 우리말사전이 아니라 99%가 영단어 또는 영숙어 풀이로 돼있어 영어사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말사전이 아니라 한문 풀이사전 또는 영어 풀이사전이 맞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세종대왕은 한자로 된 말을 모두 외래어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우리말사전이라는 명칭은 잘못된 이름이 아닌가.

다음과 같이 한자로 된 말을 토박이 우리말로 바꿔 쓰면 더 정겹고 편하지 않을까.

가곡(歌曲)=노래, 가두(街頭)=길거리, 가면무(假面舞)=탈춤, 가무(歌舞)=노래와 춤, 가산(加算)=더하기, 가수(歌手)=소리꾼, 가옥(家屋)=집, 가일층(加一層)=한층 더, 가장(家長)=집안 어른, 가치(價値)=값어치, 가택수색(家宅搜索)=집뒤짐, 감사(感謝)합니다=고맙습니다.

영어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해방 이후에 물밀 듯이 들어왔다. 우리는 지금도 너 나 할 것 없이 외래문화를 즐겨하는 사대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래어가 잠식할 때마다 우리 토박이말은 비하되고 밀려 나가 사라지곤 하는 것을 모르는지. 자랑스런 우리 문화를 우리가 버리고 있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을 아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전래되는 우리 민요는 옛 토박이말로 돼있어 뜻풀이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걱정거리임을 실감케 한다. 다행히 우리말을 아껴 쓰는 현대 시인들로 하여금 소리말이 글말로 표현되는 우리말의 구수함을 잠시나마 맛보게 해 주고 있기에 마음 한 편을 달래보기도 한다. 

수년전부터 제주에서 '제주말 땅이름 찾기'가 있었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우리말 땅이름 찾기'가 성행되고 있다. 한국 땅이름학회 정재도 고문은 "우리나라에서 전국의 땅이름과 제도이름은 일제시대 들어 대부분 한자이름으로 바꿨으며 정부 수립 뒤에도 새로 생기는 시설이나 지명을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판박이 한자이름으로 지어 붙이는 폐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일제가 바꾼 지명 오정목을 없애고 고유지명인 성안길을 되찾았고 방아다리에는 우리이름 지명비를 세웠다.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서에 보면 '문화의 발전은 언어 및 문자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에 의해 촉성된다'고 했다. 작금의 사전은 어문의 정리가 아니라 외래어 수입장이 된 것은 아닌지.

분단 70년 시대를 걷고 있는 지금 서울중심의 표준말과 평양중심의 문화어가 잘 어우러진 토박이 우리말이 중심을 이룬 남북 공통의 '겨레말큰사전'이 정치이념을 떠나 하루 속히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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